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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영광과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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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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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연합)
“대통령의 아들에게는 영광이 아니라 멍에만이 있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은 지난해 펴낸 자서전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에서 대통령의 아들이기에 겪는 비애를 참았던 울음 터뜨리듯 쏟아내고, 자기를 대통령 아들로 보지 말아달라고 역설합니다.

김 의원은 “역대 대통령의 말로가 영광스럽지 않았듯이 대통령의 아들들도 결코 행복했다고 볼 수 없다”며 “대통령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숨을 죽이며 살라는 주장엔 잔인하고 무서울 정도의 독선이 깔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도대체 대통령의 아들은 무덤에 갈 때까지 무엇을 하며 살라는 말인가. 바보처럼 살다가 실업자라도 좋다는 배필을 만나 아버지가 건네주는 생활비로 평생을 살다가 죽으란 말인가”라고 토로합니다.

자서전에서 그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토닥거렸듯이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은 죄다 불행을 겪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강석씨는 자살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부모를 총탄에 잃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아들들도 감방의 아버지 면회를 다녔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현직 대통령 아들로 감옥에 갔습니다.

김 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이 된 것을 부러워하면서, 우리도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특별하게 보지도 말고 백안시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불행히도 미국과 달리 우리는 모든 길이 청와대로 통하고 인적 지배가 이뤄지는 현실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크고 연고주의가 센 우리 실정에서 대통령 아들노릇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나서서 호가호위하지 않더라도, 권력의 유혹이 잠시도 목덜미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외줄에 매달려 거친 파도에도 거센 바람에도 손을 놓아서는 안 되는 얄궂은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측은지심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한둘도 아니고 대통령의 아들 3형제가 각종 게이트와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김홍일 의원이 진승현 게이트, 홍업씨가 이용호 게이트, 홍걸씨는 최규선씨와 연루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뒷전으로 물러나 있기에는 의혹이 너무 커졌습니다. 어떤 것은 실마리가 조금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중에는 홍단이 들어오면 판돈을 3배 붙여서 싹쓸이하는 ‘김홍일 고스톱’이 새로 나왔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아들도 유혹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유혹에 약한 것은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논란이 되고 있는 사실을 감추거나 조작하려 한다면 그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김 의원은 “선진국처럼 대통령의 자식들을 자연인으로 받아들이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자서전을 마무리했습니다. 얼굴을 보이고 진실규명에 적극 나선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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