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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수병] 페달 밟으며 뱃살 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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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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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자전거도로 왕복 40km 출퇴근… 계절이 흐르는 강변에서 봄을 맞다

봄바람이 살랑대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맞바람이 불면 출근길이 고행길로 바뀐다.
“이러다가 오래 못 가지…”라는 노래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몸을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 그것은 이미 3년 전에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나는 땀을 실컷 빼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한달에 8만원씩 하는 스쿼시 클럽에 6개월치 회비를 덥석 냈다. 하지만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헉헉거렸고, 한달을 간신히 채우고는 라켓을 놓았다. 곧 다시 도전하리라 먹은 마음은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날아가버렸다.

직장생활 10년째 내 몸은 엉망이 되었다. 주로 회사 안에서 내근하는 편집 쪽 일을 맡은 탓도 물론 있다. 간헐적인 위·십이지장 궤양에 시달리며 5년째 약을 수시로 복용하고 있다. 뒷목에 생긴 지방종 제거 수술을 할 때는 혈압강하제를 두번이나 먹고서야 간신히 전신마취를 할 수 있었다. 한여름에도 휴대용 휴지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알레르기성 비염, 마감 전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편두통, 거침없이 전후좌우로 흘러내리는 뱃살은 걷는 것마저 힘겹게 만들었다. 기자 체험으로 지난해 여름에 입소했던 신병교육대에서는 온몸이 망가져 초죽음이 되기도 했다. 귀향길 고속도로 가이드에 스트레칭 관련 기사를 쓰면서도 미리 몸을 움직여보지 않았다.

뱃살 2인치를 줄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왕복 40km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로 공언한 것은 나 자신에겐 엄청난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제 건강검진을 할 때 적어도 일주일에 5시간 이상은 운동을 한다고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됐다. 뱃살은 여전해도 진행 속도를 늦추었다는 내 식의 감동도 느껴본다. 자전거 출퇴근은 지난해 11월11일부터 3일 동안 금강산 일대에서 열린 제1회 한겨레자전거평화대행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2001년 11월22일
인터넷으로 자전거를 주문하기까지


자전거 트레킹을 생각하며 찾은 금강산. 자전거 행사는 온정각 문화회관 앞뜰에는 출발해 삼일포까지 24km 왕복이 전부였다. 하지만 자전거로 체력을 단련하고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들 곁에서 지낸 2박3일의 경험은 자전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살포시 키워놓았다. 어떻게든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문제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출퇴근길로 이용하는 강변북로와 청계고가를 자전거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말마다 취미생활로 자전거를 탈 수도 없었다. 토요일은 마감 때문에 아예 불가능하고 일요일은 새벽에 들어간 뒤 늦게 일어나 ‘자전거 취미생활’을 강행하는 건 무리였다. 그 무렵 한강 남북으로 자전거도로가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백만원군을 만난 듯했다.

한강 자전거 보행자 겸용도로는 강남에서 38.3km(양화∼광나루), 강북에서 23.2km(망원∼뚝섬)에 걸쳐 조성되어 있었다(지금은 행주대교까지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내가 출퇴근할 영동대교 북단에서 마포까지는 자동차도로보다 2∼3km는 멀지만 강바람을 쐬며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거리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철마다 계절이 흐르는 한강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기회 아닌가. 곧바로 회사 경비실에 문의하자 주차장의 한곳에 자전거를 세워도 좋다고 했다. 부푼 꿈을 안고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자전거를 주문했다.

2001년 12월3일
드디어 한강에서 자전거로 탔다

도착한 자전거는 생각보다 괜찮아보였다. 자전거 모양은 완벽했지만 부착된 것은 거의 없었다. 세워놓을 수 있는 받침대는 물론 흙받이 겸용 짐받이도, 야간주행을 위한 전등이나 깜빡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일단 집 부근의 자전거 판매점으로 가서 필요한 부품을 달았다. 앞바퀴를 탈부착하는 방법을 묻자 “산 곳에서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는 냉랭한 답변만 되돌아왔다.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샀으면 그만한 대가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홀로 분해·조립하며 배우고 때로 익히는 즐거움을 느껴야 했다.

출발지점은 군자교 부근의 성동구 송정동. 집에서 나와 화양사거리를 지나 영동대교 북단까지 4km는 인도와 차도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한강 뚝섬지구 출입구로 들어가야 했다. 터널 바로 앞에 차량 출입을 막아놓은 자전거도로가 보였다. 겸용도로에 들어서서 400m쯤 가니까 성산대교까지 18km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초겨울 찬바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침이라서 한강 이촌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물론이고 조깅을 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다. 회사 쪽으로 가려면 마포대교 부근에서 쪽문으로 나와야 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공사로 포장이 되지 않은 곳에 이르러서야 소형 터널을 통해 둔치를 빠져올 수 있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출발한 지 1시간40여분이 지났다.

2001년 1월3일

알코올이 사라지는 ‘음주 자전거’

자전거 출퇴근은 매일 이뤄지지 않았다. 토요일은 자정을 훨씬 넘겨서야 일을 마치기에 무리였다. 그래서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를 자전거 출퇴근 날로 잡았다. 때로는 안면마스크로 코와 입, 귀를 가려도 찬바람이 피부를 뚫고 뼛속까지 파고들어 출발 직후 포기하기도 했다. 어쩌다 저녁에 반주삼아 술에 마시면 불그스레한 얼굴로 ‘당당하게’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알코올 기운이 감돌아도 겨울에 강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밟으면 대개는 음주상태가 이내 사라진다. 그래도 행여 한강 속으로 질주하는 끔찍한 사태는 미리 막아야 했기에 ‘음주 자전거’는 가급적 피했다.

가장 힘든 게 추위는 아니었다. 안면마스크를 착용하면 매서운 바람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눈이 쌓인 길은 ‘지옥길’을 방불케 했다. 아무리 힘껏 페달을 밟아도 눈길에 힘을 내지 못했다. 마치 뒤에서 누가 자전거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 30여분이나 시간을 더 투자했건만 몸이 파김치처럼 풀어지고 무게는 천근만근이나 되는 듯했다. 초기에 힘들었던 것은 자전거 쇼바에 몸을 싣는 것이었다. 30분여도 견디기 힘들었다. 엉덩이가 리듬을 타듯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통증을 분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름쯤 지나서야 비로소 쇼바와 엉덩이의 환상적인 만남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2002년 2월19일
한강은 사연이 함께 흐르고 있다

마포 육갑문을 통해 자전거도로를 벗어나고 있다. 한겨울에는 안면 마스크 등으로 완전무장을 해야 한다.
한강은 서울의 젖줄이라고 한다. 아파트숲 사이로 흐르는 강물은 도심의 찌든 생활에 활력을 주게 마련이다. 강남북에 조성된 9개 지구의 한강시민공원은 철마다 다른 풍광을 보여줘 시민의 안식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전거도로 주변이 휴게공간 구실을 하는 건 아니다. 강북에서 뚝섬지구를 벗어나 이촌지구로 향하다 보면 곧바로 소금냄새 없는 한가로운 바닷가를 찾은 듯하다. 밤이 깊어가면 인적이 완전히 끊겨 으스스한 기분에 온몸이 오싹해진다. 심야에는 한남역 부근 550여년 된 느티나무 주변에서 굿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괴기스러운 느낌을 떨치려면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징소리가 들리면 찬바람의 냉기가 가슴을 파고들기도 한다. 언젠가는 종이컵에 촛불을 감싼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아들을 사고로 잃은 부부가 자식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촌지구에 들어서면 운동복 차림에 자외선 차단 모자로 얼굴을 가린 조깅족이 이내 눈에 들어온다. 그런 모습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자동차 행렬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데, 낮에는 대부분 혼자고 저녁에는 커플들이 많다. 심야에 엔진소리만 들리는 자동차 곁을 언뜻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때로는 자전거와 보행자만이 들어설 수 있는 겸용도로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버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동차 주위에서 담배를 한대 입에 물면 간단히 ‘추방’할 수 있다.

2002년 3월21일
월드컵 열기에 휩싸인 한강 둔치

한동안 찬바람에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몇 바퀴 구르고 나면 콧물이 줄줄 새어나온 탓이었다. 어느 정도 비염을 다스려놓고 찾은 한강에 봄빛이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겨우내 낮에도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뚝섬지구 쪽에도 자전거 행렬이 드물게나마 이어지고, 강변에서 결혼식을 앞두고 야외촬영을 하는 선남선녀들을 여러 쌍 보였다. 갈대밭 부근에서 쑥을 캐는 아주머니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뛰거나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훨씬 가벼워졌다. 강바람을 쐬려 둔치를 찾는 자동차 행렬도 훨씬 많아졌다.

계절이 바뀌면서 둔치도 되살아나고 있다. 얼어붙었던 땅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손이 분주한 것이다. 이촌지구는 화단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유채단지에는 씨앗을 뿌리고 촘촘한 그물망 위로 물을 뿌리고 있다. 물 뿌리는 사람 옆에서는 냄비를 들고 연신 숴이숴이 하며 비둘기를 쫓아내고 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비둘기가 유채씨를 먹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옆 단지에서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를 심기 위해 ‘톱밥퇴비’를 수백 포대 뿌리기도 했다. 월드컵 기간에 꽃이 필 수 있도록 해외에서 수입한 꽃씨를 심는다고 한다. 이제 6월이 되면 제주도에 가지 않아도 한강변에서 유채를 볼 수 있고, 미리 핀 코스모스로 가을을 먼저 느낄 수 있겠다.

2002년 4월3일
전용도로에선 전용복장 갖춰야 하나

3월 말이었다. 드디어 자전거도로를 이용해 출근하는 사람을 만났다. 사실 내가 출근하는 시각은 일반적인 직장인보다 늦기에 일찍 출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4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내가 만난 사람은 용산기지에 근무하는 직업군인이었다. 그는 1주일 전에 왕십리로 이사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했다. 평상복 차림인 나보다 훨씬 구색을 갖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낮인데도 야광띠를 두르고 발목에는 스타킹을, 머리에는 헬멧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소형 공기주입기까지 자전거에 부착한 그를 보며 얼마 전 타이어에 펑크가 났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 대책 없이 30여분을 끌고서 자전거도로를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대부분 평상복 차림이다. 아주 가끔씩 산악자전거(MTB) 복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우선 몸에 착 달라붙게 디자인된 옷차림과 전용 헬멧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 전용 복장은 땀을 빨리 흡수하고 곧바로 마르는 게 좋다고 한다. 신발도 전문 자전거용 신발을 신으면 페달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신발끈이 기어에 끼는 불상사도 막을 수 있다. 나로선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바짓단을 양말로 덮는 게 고작이다. 회사 와서 옷 갈아입을 곳도 마땅찮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땀이 나기 전에 잠시 쉬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2002년 4월11일
아직까지 뱃살은 그대로일지라도

"자전거 타면서 도로 청소도 하나요?" 야간에는 상의에 야광띠를 두르고 자전거를 탄다.
찬바람에 손이 시리던 날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요즘은 오르막길을 올라와 회사에 도착하면 샤워를 하고 싶을 정도로 땀이 배기도 한다. 뱃살 2인치 줄이기는 아직까지 희망사항일 뿐이다. 일주일에 4일을 꼬박 자전거로 출퇴근하지는 못했다. 4일을 꼬박 해도 뱃살 줄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저녁식사 뒤에 자전거를 타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허기에 허덕거린다. 아들 녀석이 먹던 과자 부스러기를 찾아 헤매거나, 라면이라도 끓여먹어야 뱃속이 잠잠해진다. 이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내 동지도 생겼다. 차고에 자전거 전용 보관대가 하나쯤 생겼으면 한다. 자동차 한대의 자리에 자전거 열대는 족히 들어갈 수 있다.

사실 20km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성산대교 18km라는 표지판이 겁나고, 절반쯤 왔을 때도 남은 거리에 한숨짓기 일쑤다. 아무리 21단 기어가 달렸다 해도 그것이 내연기관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때론 ‘오늘은 무리를 했다’는 생각에 아침에 타고온 자전거를 회사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한결 가벼워진 몸을 느낀다. 경제적으로도 주차비가 굳었고 기름값이 훨씬 줄었다. 아직 자전거 마니아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을지라도 자전거를 생활의 일부로 여길 정도는 되었다. 겨우내 나의 발이 되어준 자전거를 더위가 온다고 곱게 모셔두지는 않을 것이다. 강바람을 같이 쐴 친구가, 그것도 평생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고대 인도인들은 인생을 고행이자 여행이라고 했단다. 아직도 자전거는 내 몸에 고행이지만, 자전거 덕에 내 마음은 여행을 꿈꾼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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