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평화나비 소속 회원 등 시민들이 6월24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수요시위’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4월께다. 후원금이 할머니들을 위해선 쓰이지 않고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을 관리하는 법인 이사들이 따로 축적해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시면 ‘호텔식 요양원’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해준 이는 전쟁범죄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국 최초의 ‘미투’를 했지만 국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모습이, ‘미투’ 이후 보호받지 못하는 20대 성폭력 피해자와 겹쳐 보인다고 했다.
나눔의집 상황을 취재하던 중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보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의 전신)가 기부금을 부실 운용하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윤미향 대표(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사전에 알았는지가 의혹의 뼈대였다. 할머니는 이후 한 차례 더 기자회견을 열고 당사자 증언과 수요시위로 이뤄진 정대협의 운동 방식을 거세게 비판했다. 날카로운 단어를 걷어내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도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했다는 회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당사자로서 새 운동 방식을 모색하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어 보였다. 한국과 일본의 학생 교류와 교육을 강조한 것 역시 이런 고민이 묻어난 듯했다.
운동을 뿌리째 흔드는 목소리들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공론화하고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온 정대협·정의연과 피해 할머니들이 실제 거주한 나눔의집 문제가 비슷한 시기에 터져나온 것은 우연에 가깝다. (나눔의집 내부 고발 직원들은 2019년 3월부터 법인과 운영진을 상대로 할머니 인권침해와 후원금 유용 혐의를 제기하며 싸워왔다.) 하지만 두 사태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 거대한 과제를 한국 사회에 안겨줬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위안부’의 목소리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생존자로서 발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동 과정에서 여러 목소리가 경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는 여성, 인권, 평화, 제국주의, 전쟁폭력, 계급 등 다양한 문제가 중층으로 겹친 사안이다. 피해 생존자의 경험도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 정대협은 생존자 증언을 옮기면서 증언자들이 “복합적이고도 다면적이며 모순적”이라며, “정형화된 ‘위안부’ 모습을 찾기 힘들다”고도 진단한 바 있다.(<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그러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용수 대 윤미향·정대협’이란 프레임(틀)을 만들고 ‘위안부’ 운동의 뿌리 자체를 흔드는 보도가 이어졌다. 맥락은 축소하고 갈등만 확대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망언으로 ‘반일 정서’가 고조됐을 때만 반짝 관심을 갖고, 이마저도 민족주의 틀 안에서만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관행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녀상 같은 단일한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위안부’ 생존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조명하는 언론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반일 운동’을 넘어 보편적 여성인권 운동으로서 ‘위안부’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온 한 전문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주요 단체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의 발언을 동등한 위치에서 수용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 차원 실태조사 전담기구 없어“식민지 청산 문제를 분절적으로 접근해온 국가의 책임 방기에서 시작된 문제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은 정의연 논란을 “노-노 갈등”에 빗대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당사자 신고에만 의존해온데다 식민지 시기 피해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나 실태조사를 할 전담기구조차 국가 차원에서 마련하지 않았다. 국가의 역할을 시민사회와 학계에 오롯이 떠넘겼다. 정대협·정의연 같은 시민단체가 “과대표되고 권력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이 소장은 짚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로 2018년 8월 출범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 사태는 단적인 사례다. 1년짜리 단기사업으로 시작한 이 연구소는 출범 석 달 만에 김창록 당시 소장(경북대 교수)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표류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내부 조직이라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연구·교육 사업을 이어갈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이 추진됐지만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극우세력 역사 왜곡 목소리 커져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일종족주의’를 필두로 한 극우세력의 역사 왜곡이 퍼지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은 5월 책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을 펴내, “일본군 위안소는 후방의 공창제에 비해 고노동·고수익·고위험의 시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주장을 편 <반일종족주의>의 연장선이다.
극우세력의 주장은 보수언론과 미래통합당이 주도하는 정의연 논란과 만나 확산되고 있다. <조선일보> 등이 “‘위안부’ 운동은 반일 비즈니스”라고 폄훼하고,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란 단체는 수요시위를 두고 “청소년들한테 성노예 개념을 주입해 정신적으로 학대했다”고 주장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역사를 왜곡하고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세력에 어떻게 대항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반일종족주의>가 우파의 베스트셀러가 돼 40만 부 넘게 팔렸는데, 여러 언론이 그 논리를 이번에 고스란히 답습했다. 전쟁범죄를 은폐·미화하는 역사 부정 행위는 생존자를 부인하는 것을 넘어 페미니즘, 재일조선인, 소수자혐오와 만나 거대한 백래시(반격)로 이어진다.” ‘학문·사상·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더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벌어지는 것까지 용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의연·나눔의집 사태는 한국 사회가 ‘위안부’ 운동을 어떻게 새로운 세대가 이어가게 하고 기록할지를 묻는다. 정부·언론·학계·시민사회까지 각자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현재 17명이다.
박다해 <한겨레>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