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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뉴노멀] 그 속을 어찌 짐작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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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6-17 22:21 수정 : 2020-06-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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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정아 기자

검찰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압수수색했다. 참담한 일이다. 정의연이 외부 감사를 받겠다고 했고, 정부 역시 자체 진단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그걸로 의혹을 해소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다시 검찰의 시간인가.

검찰의 신속한 대응 배경 중 하나는 돌아선 국민 여론일 것이다. 경기도 안성 힐링센터 의혹은 결정적 계기였다. 이전까지 의혹은 회계 역량 부족이나 공시와 관련한 시스템 오류 등으로 설명할 부분도 있었다. 안성 힐링센터 의혹은 이런 차원을 넘어선다. 운동권 인맥으로 얽힌 사람들끼리 단체에 기부한 돈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동산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바라볼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자가 이런저런 해명을 내놓았지만 힐링센터를 비싸게 사서 목적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하다 싸게 판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은 진보가 대의명분을 사익을 위해 ‘팔아먹고 있다’는 서사의 근거로 쓰기 좋다. 그래서 보수언론은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인사가 신문지상에 나와 2012년 ‘사사에 안’을 논의할 때 상황을 새삼 밝힌 것에서 이들의 본심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인사는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이던 윤미향 당선자가 반대 입장이었던 걸 두고 “정대협으로선 이제 문 닫을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사사에 안’은 일본이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고 볼 수 없는 안이다. 당시에도 그 이유로 협상이 결렬됐다. 국가 책임 인정 여부는 아시아여성기금 때부터 쟁점이었다. 그러니 정대협과 윤미향 당선자가 받아들일 리 없다. 정대협이 문 닫는 문제와 관계가 없다.

‘문 닫을 걱정’을 한 것에 해당하는 건 이쪽이 아니라 나눔의집 사례다. 나눔의집 이사회가 시설을 호텔식 요양원으로 바꿔 수익을 창출하자고 논의했다는 내부 고발은 충격적이다. 이들은 호텔식 요양원 사업은 확정된 바 없다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하고 나면 사업이 자동 종료되니 이후를 대비하는 논의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과 활동을 기릴 방법이 아니라 이윤 창출부터 생각했다는 건 애초에 일본에 전쟁범죄 책임을 묻는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에 나서고 윤미향 당선자의 ‘무릎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배경에는 이런 현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생존 피해자의 존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서 가장 큰 동력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이대로 가면 몇몇 국회의원과 장관을 배출한 결과만을 남긴 채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지어 제대로 교육하겠다면서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한 일을 이용수가 마무리지어야 죽어도 할머니들 보기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 것에는 이런 고민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 당선자를 안아주고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화해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는데, 그 심경을 어찌 다 짐작하겠는가. 우리가 할 일은 앞으로 어떻게 일본에 전쟁범죄 책임을 묻고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각자 자기 좋을 대로 이용수 할머니의 말을 활용할 게 아니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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