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빈민가에 인술을 심는다
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어쩌다 해외에 나갔을 때 외국인들이 던지는 듣기 거북한 질문이 하나 있다. “한국전쟁으로 외국의 도움을 받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가난한 제3세계를 얼마만큼 도왔느냐”는 것이다.
페루 빈민가에서 7년 동안 인술을 펴온 문장호(45) 박사를 보면 대답할 게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비뇨기과 전문의이자 의학박사인 문씨는 페루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잘 나가는’ 의사로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는 한국국제협력단 파견의사로 가족과 함께 93년 10월 페루 리마에 첫발을 디뎠다. 그때 페루는 경제위기에다 좌익게릴라들 때문에 걸핏하면 전기가 끊기는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회의가 찾아들었다. ‘무엇인가 사람구실을 하면서 남과 더불어 살아야할 텐데….’ 얼마 뒤 의료시설이 태부족한 페루에서 빈민들을 만나는 것이 그에겐 명쾌한 해답으로 다가왔다.
“처음 와보니, 책에서 보고 말로 전해 듣던 것보다 모든 게 형편없더군요. 의료시설도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열악하고….”
문씨가 페루에 온 지 1년 만에 한국 정부는 리마 외곽에 제1의료센터를 세웠고, 그뒤 100만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들여 모두 4개의 의료센터를 지었다. 하지만 어느 곳보다 문씨가 애착을 갖고 있는 곳은 99년 리마시 변두리 비타르테 지역 빈민가에 지은 작은 병원이다. 사재를 털고 현지 동포들의 도움을 조금씩 모아 어렵사리 이 병원을 지었다. 준공테이프를 끊던 날, 문씨는 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의 말없는 격려가 없었다면 그만두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리마 주재 한국대사관 김진만 영사의 손도 맞잡았다. 김 영사는 물심양면으로 병원짓는 일을 거들어주었다. 그래서 문씨는 그를 “대부”라 부른다.
비타르테 빈민촌에 병원을 짓고나서 문씨는 더 바빠졌다. 제1의료센터에서 정상근무를 마치고 1주일에 두번씩 오후에 이곳 병원으로 와 무료진료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페루 친구들을 여러 명 사귀었다.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현지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은 교대로 시간을 내서 비타르테 병원을 지킨다. 부족한 병원시설을 제대로 갖추기위해 ‘조만간 다시 일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씨는 요즘 고민중이다.
리마=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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