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몰랑] 사흘간 같은 이유식도 잘만 먹더라
가족 식사에 대한 책임감 줄이고 요령을 터득하기까지
등록 : 2020-06-12 16:07 수정 : 2020-06-15 10:29
어쩌다 내가 요리를 맡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치열한 투쟁과 협상으로 결정해야 할 이 중요한 사안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거로 정해지고야 말았다.
지방 출신인 아내는 취직하고 비슷한 시기에 서울로 온 동생과 함께 살았다. 둘이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기함했다. “설거지를 일주일 동안 안 해서 그릇에 곰팡이가 피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귀찮아서 냉동실에 모아놓거나 변기에 버렸다” “요리는 거의 하지 않고 대부분 간편음식이나 배달음식을 먹었다” 등.
나는 아내보단 요리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었다. 내가 요리를 시작한 것은 회사에 다닐 때 부모님 집에서 나와 2년간 자취하면서였다. 계속 음식을 사 먹을 순 없으니 간단한 파스타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닭도 튀기고 연어도 굽고 나름 모양을 냈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내는 여전히 요리를 귀찮아해, 그나마 요리에 익숙한 내가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했다. 집안일이란 결국 못 참는 사람이 하게 되는 법이니까.
이래저래 몇 년간 요리를 해보니 흥미를 붙일 만한 면이 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치여 살다보면, 말 없는 사물을 대하는 게 편할 때가 있다. 투입한 노력만큼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매력적이다. 피드백도 바로 받을 수 있다. 아내가 음식을 먹고 “진짜 맛있다!”고 감탄하면, 요리하면서 힘들었던 게 다 잊힌다. 페이스북에 이 이야기를 올렸더니, 어떤 페친이 댓글로 “평생 네가 요리하라고 칭찬해주는 거야!”라는 무서운 진실을 일깨워주기는 했지만.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이대로 내가 평생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게 되는 걸까’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집안일과 주방에 들이는 시간만큼 일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개발하거나, 나만을 위해 보내는 시간이 너무 줄어드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이 중요한 일을 아내에게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한동안 주방에 서보니 이게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해야 할 만큼 시간이 많이 들거나 힘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는 한다. 점점 장을 보기도 쉬워지고, 음식 만드는 시간도 줄었다. 정 하기 싫거나 시간이 없을 때는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거나 사 먹는 방법도 언제든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식사 담당이니 아기 이유식 만들기도 내 몫이다. 처음에 아내는 “이유식 만드는 것까지 하면 힘드니까 사서 먹이면 어떻겠냐”는 쪽이었다. 난 일단 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만 5개월부터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해서 이제 두 달이 넘었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다. 물론 요령을 좀 부렸다. 이유식 책에선 거의 날마다 새로운 메뉴를 만들라고 돼 있긴 한데, 한번에 사흘치를 몰아서 만들었다. 한 시간이 안 돼 만들 수 있어 부담이 적다. 어떻게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요령을 잘 부려서 부담을 최소화할지 찾는 게 내가 생각하는 모두가 행복한 집안일과 육아의 노하우다.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서서 요리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나도 궁금하다. 아이가 초등학생쯤 되면 요리를 하나둘 가르쳐주고 싶다. 파를 썰고 달걀을 넣어 라면을 끓이는 것부터 시작해, 간단한 파스타 만드는 법도 알려주고 싶다. 아이가 커서 결혼한다면, 무거운 가사의 짐을 배우자와 공평하게 나눠 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사랑은 평등한 관계에서 자라나는 것이니까.
글·사진 김지훈 <한겨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