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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단편영화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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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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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종수 기자)
극장관계자를 위한 배급 시사회장은 나이 지긋한 노신사들의 잔치였다. 이 늙수그레한 분위기가 얼마 전부터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젊은 여성들이 열댓명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계의 급격한 변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극장이다.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가 외면의 변화라면, 극장의 영화 수급을 담당하는 인력이 젊은이, 특히 여성으로 바뀌는 건 물밑의 큰 흐름이다.

그 가운데 한명인 중앙시네마의 강기명(30) 팀장이 당찬 ‘사고’를 냈다. 4월19일부터 단편영화 2∼3편을 묶어 유료 상영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일반 극장에서 단편영화를 고정적으로 상영하는 건 국내 처음이다. 매년 600여편의 단편이 만들어지는 ‘단편영화 강국’인 국내에서 젊은 영화인들의 작품이 관객과 직접 만나는 자리가 뒤늦게 생겨난 것이다.

“내부에서 반발이 자못 컸어요. 극장 쪽에 손해를 가져올 수 있는 모험이니까요. 그래서 아침 시간대에 상영하고 주말에는 아예 빼 위험부담을 줄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정면 대응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주말을 포함해 매일 저녁 7시30분∼8시30분 사이에 1회 상영키로 했다. 첫 상영작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만든 <도형일기>와 <둘의 밤>이다. 갓 성년이 된 여성의 성장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신선했다면, 이들 단편은 거기에 더해 격렬하고 도전적인 맛을 준다.

최근에 화제작을 만든 감독인 만큼 지명도를 고려해 첫 상영작을 정했다지만, 여성 감독이 만든 문제작이라는 점은 강씨 자신, 그리고 극장의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진다. 강씨는 스크린 수가 하나이던 단관에서 3개관으로 늘리던 98년 중앙시네마에서 일을 시작했다. 낡고 오래된 극장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게 그의 일이었다. 여성관객을 타깃으로 삼아 극장에서는 처음으로 여자 화장실 안에 여성들만의 휴식 공간인 ‘파우더룸’을 만드는 등 극장 차별화에 고심해왔다. 덕분에 2000년 5개관으로 늘린 것과 발맞춰 매출이 매년 50% 정도 늘고 있다고 한다.

“단편영화를 상영해 극장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처럼, 작품성이 좋았으나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극장을 못 잡는 영화들에 좀더 많은 배려를 할 생각입니다. 극장의 이미지가 좋으면 흥행성이 좀 떨어져도 관객들이 외면하지 않거든요.”

강씨에게는 이런 생각을 구체화할 ‘힘’이 있다. 수많은 영화를 직접 보고 극장에 걸 작품을 고르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다 메이저 배급사의 요구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당당히 거절하는 원칙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단편영화 상영이 성공할지 상당히 긴장되지만 올해만큼 일이 신나고 재미있는 때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야무지게 자기 영역을 키워가는 모습이 정말 신바람나 보였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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