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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랑해, 맹산의 반딧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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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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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고교의 맹산 이전’ 막아낸 분당 주민들, ‘내셔널트러스트’운동에 돌입하다

사진/ 4월 5일 성남시 맹산에서 열린 야생꽃나무심기 행사, 철쭉과 벌개미치 등 1천여 그루가 땅에 뿌리를 내렸다.
식목일인 4월5일 맹산엔 봄꽃이 활짝 피었다. 흐드러진 벚꽃은 벌써부터 산들바람에도 우수수 꽃비를 뿌려대며 이른 퇴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분홍빛 진달래 꽃잎은 양지녘 골짜기부터 점점이 판도를 넓혀가고 있었다. 더 울긋불긋한 건 사람꽃이었다. 사람들은 화사한 봄옷을 차려입고 신록이 더해가는 맹산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봄옷으로도 모자라 아예 반팔 차림이었다. 오전 꽃나무심기 행사에선 철쭉과 벌개미치, 비비추, 이팝나무 등 모두 1천여 그루의 야생화가 땅에 뿌리를 내렸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구덩이를 파고 물을 뿌리는 몸놀림에 잔뜩 신명이 났다. ‘자원봉사’라고 쓰인 빨간 조끼를 두른 인근 낙생고와 성남공고 학생 50여명이 묘목을 나르고 뿌리내린 상태를 확인하느라 분주히 오갔다.

400여 가족이 참여한 반딧불이자연학교

오후 2시 식이 시작됐다. 내빈소개와 인사말에 이어, 이영림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www.ntrust.or.kr, 031-712-5600) 운영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맹산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자연과 훼손되어가는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손으로 살리기 위한 국민운동 ‘내셔널트러스트’의 12번째 후보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에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 트러스트운동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 맹산을 국민의 산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이 훌륭한 자연유산을 미래세대와 영원히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 운동에 여러분의 자발적인 동참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단상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앉은 200여 참가자들의 박수소리가 맹산 골짜기를 짜랑짜랑 울렸다. 봄이었지만, 오후의 햇살은 화창하다 못해 따갑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옮겨가는 나무그늘을 따라 자리를 바꿔앉으면서도 찡그림 없이 자리를 지켰다. 절반이 넘는 이들은 트러스트운동에 동참해 1구좌당 1만원씩 하는 후원금 약정서를 써냈다.


맹산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목련마을 옆의 야트막한 야산이다. 3만1천평쯤 되는 자그마한 산이지만, 분당 주민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들인 품은 결코 적지 않다. 1994년 분당환경시민의 모임(회장 조봉자)이 도심 안의 생태 프로그램으로 어린이환경교실을 이곳에 열었다. 2년 만인 96년 10월 송림고등학교가 맹산으로의 이전을 발표하면서 시민들의 맹산지키기 운동이 시작됐다. 분당환경시민의 모임과 맹산 인근의 아파트·빌라 주민들은 분당의 몇 안 되는 순수 자연환경을 훼손할 수 없다며 서명운동을 벌여 성남시와 환경부에 청원을 넣었다. 때로는 맹산 들머리나 학교재단 사무실 앞에서 시위도 벌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맹산에 반딧불이자연학교를 열어 관내 초·중·고 학생들과 가족단위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8주 단위의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이만 지금껏 400여 가족, 700여명에 이른다. 계절별로 각종 이벤트도 마련했다. 봄엔 가족나무 한그루심기, 야생화심기 행사를 펼쳤다. 지금껏 맹산에 심어진 야생꽃 나무만 2만3천여 그루다.

8월의 반딧불이축제는 특히 맹산 보존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시민들은 맹산이 반딧불이가 자생하는 국내 몇 안 되는 청정구역임을 발견하고 맹산을 도심공간의 소중한 자연학습 공간으로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송림고등학교는 맹산 아닌 다른 곳에 세워졌고, 성남시는 99년 맹산을 반딧불이 복원지역으로 지정했다. 시는 재단으로부터 맹산 사용권을 인수했고,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에 공공근로 인력을 지원해 반딧불이의 서식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을 돕도록 하고 있다.

‘한 포기 심기’에서 ‘한 구좌 사기’로

사진/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는 처음엔 어린이 생태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이들의 작은 정성은 맹산의 생태환경을 지켜나갈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맹산지키기 활동은 지금까지 꽤 성공적인 성과를 올린 셈이다. 그런데도 왜 맹산지킴이들은 새삼 내셔널트러스트라는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을 선포하게 된 것일까. 정병준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 트러스트추진위 운영위원장은 “내셔널트러스트 방식만이 맹산을 영구히 주민의 녹색자산으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말하자면 ‘한 포기 심기에서 한 구좌 사기’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무리 나무며 야생화를 심고 반딧불이를 살려낸다고 해도, 맹산이 사적 소유지로 남는 한 언제고 다시 개발의 논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맹산이 공공의 소유로 바뀌어야 합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국민신탁이라고 번역된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문화환경을 보존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공동명의로 소유권을 확보해 개발을 저지하고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을 말한다. 1895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현재 영국 토지의 1.5%, 해안지역의 17%가 사유지에서 이 운동의 공동소유로 바뀌었다. 회원이 250만명, 연간 예산이 300억을 넘는 영국 최대의 환경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일본, 뉴질랜드 등 27개 나라로 활발히 퍼져간 내셔널트러스트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1998년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전면화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460여개 단체가 참여한 ‘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이 결성됐다. 여기서 그린벨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운동으로 내셔널트러스트가 추진됐다. 2000년 1월엔 정식으로 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운동(www.nationaltrust.or.kr)이 출범했다. 그리고 불과 2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내셔널트러스트는 전국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진행되는 장소는 모두 14곳에 이른다. 올해 맹산과 안양 만안구 도시공원, 부산 100만평 시민문화공원 등이 새 대상지역으로 뽑혔고, 이 중 맹산이 이날 가장 먼저 트러스트운동 돌입을 선포했다. 14곳 가운데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직영하는 곳은 동강과 신두리 해안사구, 강화 매화마름 등 3곳이다. 직영 지역은 700여 회원이 매달 3천원에서 1만원씩 내는 회비를 적립한 기금으로 운영된다. 재산이나 월수입의 1%를 정기적으로 출연하도록 하는 ‘1% 클럽’ 제도와 기업 기부도 주요한 재정대책이다. 나머지 11곳은 지역별로 별도의 트러스트운동 기구가 만들어져 내셔널트러스트운동과 연계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날 맹산 선포식에 참석한 박석근 내셔널트러스트운동 사무처장은 “2030년까진 전국 100곳으로 대상지역을 늘릴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선 지역별 연계 사이트의 활성화가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1만명 후원자 1억원 기금조성”이 첫 목표

맹산은 지난해 말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주최한 내셔널트러스트 후보지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으며 내셔널트러스트운동으로의 전환을 준비했다. 김경희 분당환경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은 “비록 맹산이 전국적으로 자랑할 만한 절경을 지닌 곳은 아니지만 도심 한가운데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드문 공간이라는 점에서 내셔널트러스트 대상지역으로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정병준 운영위원장은 “지금껏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이른바 국가적 중요성을 지닌 장소를 구매대상으로 삼았지만, 우리는 시민들의 접근성과 참여 가능성이라는 점을 새롭게 부각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석근 사무처장은 “시민 대상의 각종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천혜의 적지라는 점과 이를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열정이 분출하고 있다는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수상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선포식과 함께 맹산반딧불이자연학교에 전달된 트러스트 구좌(1구좌당 1만원) 수는 모두 150여개에 이른다고 주최 쪽은 밝혔다. 5구좌를 개설한 김명숙 환경부 장관이 1호 기증자가 됐고, 김병량 성남시장도 직접 맹산을 찾아 1구좌 약정서를 썼다. 지난해 엄마, 아빠와 함께 반딧불이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하목민(분당 미금초등교 3)양은 식구 수에 맞춰 4구좌를 약정했다. 하양은 “아파트숲만 보다가 이곳에서 뛰놀며 너무 재미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며 “내셔널트러스트 후보지가 됐다는 소식에 뭔가 돕고 싶어 엄마, 아빠를 졸랐다”고 말했다.

성공까진 아직 맹산트러스트운동이 갈 길이 멀다. 이 정도 모금으론 맹산 전체를 사들인다는 원대한 계획엔 턱없이 모자란다. 김경희 사무국장은 “산 전체를 사들이는 데는 수십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병준 운영위원장은 “앞으로 1만명의 후원자를 모아 1억원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첫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그 돈으로 산 전체를 공공소유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나아가 시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포식이 끝나고도 주민들은 쉽사리 맹산을 떠나지 않았다. 몇몇 가족은 반딧불이 생태지역으로 조성된 다락논과 웅덩이 안에서 꼬물꼬물 헤엄치는 올챙이를 신기한 듯 구경했다. 일부 주민들은 “내가 심은 꽃나무가 잘 자라도록 물을 더 주고 가야겠다”며 양동이를 챙겼다. 말랑말랑한 비닐봉지처럼 생긴 도룡룡 알집을 손으로 만지던 원은홍(성남 희망대초등교 2)양은 “맘대로 물장난, 흙장난해도 나무라지 않아 너무 신난다”며 함박 웃었다. 채규철 두밀리 소나무 자연학교 교장은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지역주민들의 참여 속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며 “반딧불이학교의 사례가 트러스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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