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70쌍 이혼시대, 온갖 사실과 진실이 만화경처럼 뒤섞인 이혼법정 방청기
왼쪽과 오른쪽에서 곱지 않은 눈길이 힐끔힐끔 날아왔다. 공교롭게도 나는 방청석 중간에 앉아 있었다. 양쪽으로 무리지어 앉아 있던 원고와 피고의 가족들은 내가 ‘누구 편’인지 탐색하는 듯했다. ‘내 편’이 아닌 이상 ‘저 편’이었다.
판사는 재산분할을 위한 돈 계산에 들어갔다. 아파트 값, 주식 가치, 퇴직금 용도에 대한 원고와 피고 쪽 의견이 엇갈리자, 주식 시세 변동표와 가족 명의의 은행 입출금 명세서 등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아내 쪽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수채화같은 이혼기사? 순진한…
법정이라 표현을 자제하는 눈치였지만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참다 못한 판사가 한마디했다. “통상 재산의 3분의 1을 아내에게 주도록 하고 있어요. 남편분은 300만∼400만원 아끼고 평생 쫀쫀한 남자, 야박한 아버지라는 소리 듣고 싶으세요?” 남편은 “내 월급으로 재산 모은 건데 자기가 무슨 자격이 있어요?”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아내가 “무식한 소리 하고 있네. 돈은 다 빼돌려 놓고”라고 끼여든다. 판사가 내처 말했다. “원고 쪽도 그만하세요. 돈 빼돌렸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통장을 대든지, 땅문서를 대세요.” 심리가 끝나고 법정 밖 대기실로 나온 부부는 급기야 육박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법정 경위가 밖에 나가 싸우라며 그들을 내보냈다.
애초 ‘이혼법정 방청기’라는 기사를 기획했을 때, 나는 한폭의 수채화 같은 기사를 쓰고 싶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야 기나긴 인생에서 얼마든지 반복되는 일이 아닌가. 피와 살을 나눈 부모자식·형제자매들도 죽음이라는 거대한 격리 앞에서 속절없이 헤어지는데, 남남으로 만난 부부가 자기 의지로 헤어지는 것임에야! 게다가 하루 평균 877쌍이 결혼하고 370쌍이 이혼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혼법정은 이혼에 따른 각종 문제를 피부로 접할 수 있고, ‘법대로’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처참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이혼을 보고 싶었다. 이런 바람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4월3일 정오. 서울가정법원 종합민원접수실 앞. 은행창구처럼 생긴 곳에 줄줄이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이혼과 상속 등 재판에 필요한 서류들을 내는 곳이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준비서류 목록을 수첩에 적고 있었다. 남편이 협의이혼을 하기로 해놓고는 번번이 출석하지 않아, 아예 소송으로 가게 됐다고 말한다.
이영애(가명·35)씨는 결혼한 지 8년째. 남편의 무분별한 카드빚으로 전세 아파트와 자신의 결혼 전 직장 퇴직금도 몽땅 날렸다고 한다. 이혼의 직접적인 계기는 그 와중에 남편이 “딴살림까지 차렸기 때문”이다. 이씨는 위자료나 재산분할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투는 까닭은 여섯살된 아이 문제다. 이씨는 “직장도 구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며 “지방 대도시에서 연금생활을 하는 시댁 어른들은 아이를 맡아줄 능력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 쪽은 “아이만은 못 맡겠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드물지만 이혼법정 안에서는 아이를 서로 안 키우겠다고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장난치며 기다리는 부부의 사연
서울가정법원 4층의 협의이혼 법정. 이혼을 앞둔 부부들이 대기실에 앉아 직원의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부부가 침통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거나 다른 쪽을 쳐다보며 등을 돌리고 있는 데 비해 유독 한쌍의 부부는 계속 장난을 치며 웃고 있다.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이들 부부는 1년간 동거하다 혼인신고를 했는데, 양쪽 집안에서 반대하는 통에 “일단 갈라서기로 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헤어지지 않으면 생활비를 안 주겠다고 하는 통에 할 수 없이 선택한 ‘차선책’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남편 쪽은 이혼하는 대신 유학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유학을 떠나면 외국에서 만나기로 ‘모종의 약속’을 했다고 한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01년 한해 이혼한 사람은 13만5천쌍으로 1990년 4만5천쌍에 비해 세배 이상 증가했다. 동거 기간을 보면 4년 미만이 30.5%, 20년 이상이 11.3%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이혼 건수 중 4년 미만을 산 부부의 비율은 줄었지만, 20년 이상 산 부부 비율은 90년 3.9%에서 훌쩍 늘어난 셈이다.
‘철없는 부부’가 사라진 뒤, 한쪽에서 혼자 퉁퉁 부은 얼굴로 앉아 있던 아주머니에게 “이혼 결심을 한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그 쪽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물어왔다. 남편을 기다리는 예비 이혼자로 보였을 것이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아주머니가 짧게 답했다. “30년.” 그리고 말을 이었다. “작년에 막내 딸까지 결혼했거든. 이제는 헤어질 수 있지.”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복도 저편에서 계속 서성대고 있다. 그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부부 중 한쪽이 협의이혼 신청을 하면 출석기일이 잡혔으나, 지난 2월1일부터는 부부가 함께 와서 신청하도록 예규가 바뀌었다. 배우자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또는 홧김에 이혼신청을 해놓고도 어느 한쪽이 출석하지 않는 경우가 잦아서 바꾼 것이다. 서울가정법원의 경우 오전에 신청하면 오후에 판사 앞에서 도장 찍고, 오후에 신청하면 다음날 오전에 하게 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판사는 양쪽의 의사를 한번 확인하고 아이 문제를 물은 다음 이혼을 ‘허가’해준다.
재판이혼 법정, 당신도 볼 수 있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30초 안팎. 1년 산 부부든 10년 산 부부든 똑같다. 문득 결혼에 드는 시간이 얼마 정도일까 계산해봤다. 결혼식만 해도 최소 30분, 신혼여행 최소 3일, 이런저런 준비까지 합하면 최소한 30일은 되지 않을까. 이에 비해 이혼은 정말 허무할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이뤄졌다. 물론 이 아주머니처럼 30년을 고민한 사람도 있지만.
가정법원 3층은 재판이혼 법정이다. 한 법정에서도 하루 평균 100건 이상의 다툼이 벌어진다. 협의이혼 법정은 당사자만 들어가게 돼 있지만 재판이혼 법정은 판사가 특별히 비공개 방침을 정하지 않는 한 방청이 허용된다. 개정중이라는 불이 들어온 한 법정에 들어가려 하니, 법정 경위가 “증인으로 왔느냐”고 물었다. 그냥 방청하려 한다고 하자, “아, 워밍업하시려는 거군요”라고 말을 받았다.
남편 쪽이 원고, 아내 쪽이 피고였다. 이들이 세들어 살던 건물주가 증언대에 서 있었다. “전세는 애기 엄마 명의로 했고, 시누이 시집보낸다면서 돈 1천만원 빌린 것은 애기 아빠 명의로 차용증을 썼다. 애기 엄마 성격이 표독하고 만만치 않아 순해보이는 애기 아빠는 살기 힘들어 보였다.” 남편 쪽 변호사의 유도질문이긴 했지만, 아내 쪽에 불리한 증언들이 쏟아져나왔다. 회계사인 남편은 성격도 안 맞고 집착이 많은 아내가 무서워 집을 나왔고, 아내는 전도유망한 남편의 배경에 욕심을 내 그를 꼭 잡으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은 반대심문. 아내는 변호사 없이 스스로 변론했다. 반대심문에 따르면 남편은 두세 차례 아내를 구타해 경찰이 집에 온 일도 있고,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놓고는 아내에게 갚도록 떠넘긴 눈치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남편은 “마마보이” 같았고, 아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은 할 수 없다”는 집착을 갖고 있었다. 젖먹이 아이를 두었지만,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실질적인 파경상태인 듯했다. 판사는 방청석에 앉은 남편에게 “정말 이혼하려고 하느냐”고 물었고 남편이 그렇다고 하자, “재산이라고 해봤자 전세금 3천만원인데 꼭 나눠야겠느냐”고 재차 묻고는 다음 기일에 ‘강제조정’을 한다고 말했다. 강제조정이라는 것은 이혼할지 안 할지,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지 당사자 합의가 안 되므로 판사가 조정해주는 것이다.
재판상 이혼을 하려면 민법 840조에 규정된 이혼사유가 있을 때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등이다.
앞의 경우에는 남편 쪽이 구타를 하고 집도 나갔으므로 표면적인 귀책사유는 남편 쪽에 있어 보였다. 과거에는 귀책사유가 있는 쪽은 이혼소송을 낼 권리가 없었지만, 요즘에는 귀책사유가 있든 없든 한쪽이 강력하게 원할 경우 사실상의 파경으로 이해하고 재판부도 이혼판결을 내리는 추세다. 억지로 살라고 해봤자 살 수 없는 관계기 때문이다.
가사법정은 보통 조정단계를 거쳐 재판에 들어간다. 판사가 양쪽의 의견을 듣고 최대한 양보하게끔 하는 것이 조정단계로, 판사 한명이 다루는 단독심이다. 그래도 합의가 안 되면 판사가 조정위원회를 거쳐 강제조정을 한다. 이 조정에 불복하는 당사자는 결정문이 날아온 지 20일 안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툼이 복잡한 양상이면 재판으로 넘긴다. 1차 판결이 난 뒤 항소심에 들어가면 더 이상 단독심이 아니다.
지난 4월4일 오후 2시 30분. 판사 3명이 앉아 있는 항소심 법정이 열리고 있었다. 부부의 대리인인 변호사들이 앞에 서 있고, 남편쪽 식구들은 방청석 오른쪽에, 아내의 친정어머니와 언니들은 왼쪽에 앉아 있었다. 시누이의 증언이 시작됐다.
시누이는 올케가 혼수도 제대로 해오지 않고 시댁을 대놓고 무시하고 시어머니 밥도 차려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런 와중에 아이가 유산됐는데 알고 보니 결혼 전부터 만성 신부전증을 앓았으면서도 속이고 결혼했다는 것이다. 또 시어머니와 남편을 내몰다시피 하고는 시집 재산을 축내기 위해 사정없이 보일러를 떼고 전기 스위치를 켜놓아 할 수 없이 가스와 전기를 끊었다고 말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시어머니가 몇 차례 끼여들려 하자 경위가 제지했다.
반대심문을 할 동안 시누이의 말이 번복됐다. 본인이 보고 들은 일들이 사실은 대부분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것이었다. 또한 올케는 직장여성이었고, 생활비의 대부분을 책임진 상황이었다. 혼수 역시 시댁에 들어와서 살기 때문에 딱히 준비할 게 없었다. 그리고 전기와 가스를 끊은 정황도 앞뒤가 맞지 않은 것에 비춰볼 때 며느리를 내쫓기 위한 것으로 짐작됐다. 알고 보니 이 재판은 지난해 8월, 1심 판결이 나 신문지상에 짧게 소개된 이혼사건의 항소심이었다.
증인으로 나선 9순노인의 눈물
1심에서는 “이혼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아내 쪽은 질병을 감추고 결혼해 임신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시어머니에게 불손하게 대한 잘못이 있고 남편 쪽은 고부간 갈등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아내를 쫓아내다시피 했으므로, 양쪽의 잘못이 비슷하니 (아내 쪽이) 별도의 위자료를 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고부갈등으로 빚어진 불화 같았다. 시어머니는 외아들의 부부생활을 사사건건 간섭하고, 직장생활하는 며느리를 조금도 이해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가운데 피곤한 며느리는 짜증이 쌓였고, 남편은 이를 남의 일처럼 나 몰라라한 것이었다. 법정 밖 복도에서 잠깐 만난 아내 ㅇ씨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남편이 재판을 건 것은 시어머니 압력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사이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저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위자료를 청구하는 항소심을 건 겁니다. 일단 헤어지고 나니 건강도 좋아지고,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어요.”
이혼법정은 온갖 사실과 진실이 뒤섞인 만화경 속 같았다. 법정에서 다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면의 ‘진실’은 쉽게 알 수 없다. 때론 거두절미한 사실이 진실을 가리고, 때론 진실이 자체의 무게로 사실을 짓누르기도 한다. 4월4일 오후 한 단독심 법정에서는 9순 가까운 노인이 사위와 딸의 이혼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말을 하다 눈물을 흘리고, 연신 기침을 하기도 했다. 방청석에서는 예외없이 양쪽 집안 사람들의 기싸움이 벌어졌다.
“이 우물에서 절대 물 안 마신다고 침뱉고 돌아서면 언젠가는 그 우물 물을 다시 마시게 된다”는 옛말이 있다. 한때는 부부였던 남녀의 다툼과, 한때는 사돈이었던 집안의 싸움을 보면서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서로 아끼고 신뢰하는 것이 결혼의 중요한 요건이라면, 이제는 ‘깨끗하게 헤어지기’ 역시 비중있게 포함돼야 하지 않을까. 가정법원 밖 법원 예식장 표지판 앞에서는 젊은 남녀가 밝은 웃음을 뿌리며 걷고 있었다. 봄꽃이 한창이었다. 난 어지러웠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사진/ 서울가정법원 협의이혼 접수실에서 한 여성이 서류목록을 적고 있다. 부부가 함께 신청하고 기일에 나란히 출석해야 한다.
법정이라 표현을 자제하는 눈치였지만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참다 못한 판사가 한마디했다. “통상 재산의 3분의 1을 아내에게 주도록 하고 있어요. 남편분은 300만∼400만원 아끼고 평생 쫀쫀한 남자, 야박한 아버지라는 소리 듣고 싶으세요?” 남편은 “내 월급으로 재산 모은 건데 자기가 무슨 자격이 있어요?”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아내가 “무식한 소리 하고 있네. 돈은 다 빼돌려 놓고”라고 끼여든다. 판사가 내처 말했다. “원고 쪽도 그만하세요. 돈 빼돌렸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통장을 대든지, 땅문서를 대세요.” 심리가 끝나고 법정 밖 대기실로 나온 부부는 급기야 육박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법정 경위가 밖에 나가 싸우라며 그들을 내보냈다.


사진/ 당사자만 들어가는 협의이혼 법정. 판사 앞에서 의사를 확인하고 나오는 데 불과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사진/ 가파른 이혼율 상승 속에 소송을 제기하는 부부도 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에서는 단독심일 경우 하루 100건 이상의 심리가 열린다.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