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풍’의 소멸
등록 : 2002-04-10 00:00 수정 :
민주당 고위간부를 만났더니 불꽃놀이가 너무 빨리 시든다고 볼멘 소리를 합니다. 선거는 뭐니뭐니해도 선두다툼이 있어야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주말 3연전을 노무현이 쓸어 대세가 정해지는 바람에 흥행적 요소가 반감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대구·인천·경북 세곳을 노무현이 다 이긴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읍니다.
아쉽기는커녕 저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흥행이 되든 반감이 되든 그것은 민주당 사정이지 제가 상관할 바 아닙니다. 하지만 새벽에 목련 봉오리 보듯 개운합니다. 노무현이 이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노무현 역시 꾸준한 검증 대상이지 무조건적 지지 대상은 아닙니다. 이인제가 졌기 때문도 결코 아닙니다.
인위적 여론조작, 편파왜곡보도를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이긴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시민이고 시민의식입니다. 지난 주말의 3연전은 시민의식의 값진 승리로 선거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입니다. 대구·인천·경북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주말 경선 기간에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지난해 술자리에서 있었던 언론 관련 발언을 멋대로 증폭시켜 노무현에게 융단폭격을 퍼부었습니다. 메시지는 “천하에 못된 과격분자 거짓말쟁이”, “그런 망아지가 후보 되면 큰일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길길이 날뛰며 외치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먹히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조선·동아가 합창하면 지지율은 응당 떨어져야 했습니다.
마침 사단이 된 지난해 술자리에 우리 임석규 정치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한겨레> 정치부 기자였습니다. 이번호에서 당시의 정황을 독자 여러분께 소상히 밝히도록 했습니다. 그 자리에 기자가 있지도 않았던 조선·동아의 ‘카더라 보도’와는 다른, 정확하고 일차적인 진실 접근이 될 것입니다.
기자들끼리 흔히 하는 말로 기자가 둘 이상일 경우, 회사가 같으면 비보도 약속이 지켜질 수 있지만 소속사가 다르면 지켜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쟁심리 때문입니다. 지난해 8월의 술자리에 참석한 기자는 여러 신문·방송의 5명이었습니다. 각사에서 보고받은 데스크까지 포함하면 10명이 됩니다.
속된 말로 부모 팔아서라도 특종을 하고픈 것이 기자의 생리입니다. 5명 또는 10명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습니다. 술자리의 정황과 말의 무게로 볼 때 특별히 새롭거나 의미를 부여할 사안은 아니라고 기자들 각자가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이해됩니다.
그런 일을 뒤늦게 끄집어내서 멋대로 증폭시키는 것은, 언론이 사실을 입맛에 따라 얼마나 침소봉대할 수 있으며, 이해에 따라 어떻게 견강부회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신문은 경선 결과에 꽤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대책 없는 ‘전투신문’으로 ‘고’하나 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