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2월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월7일 경기도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추미애 장관을 예방한 뒤 나오고 있다. 왼쪽부터 연합뉴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청와대 의혹’ 공소장 비공개로 꺾인 추미애 추 장관은 ‘윤 사단’ 해체 인사를 시작으로 검찰개혁의 포문을 열었다. ‘검찰주의자’인 윤 총장과 측근들의 힘을 빼지 않으면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 장관이 1월8일과 23일 단행한 검찰 인사는 ‘윤 사단’이 요직을 장악한 기형적인 체제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임명됐을 때 그의 측근들을 대거 요직에 앉혔다. <뉴스타파> 기사(2월25일치)에 따르면, 윤 총장과 함께 수사하거나 같은 팀 또는 부서에 소속됐던 검사 41명 가운데 24명이 윤 총장과 함께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등의 주요 보직에 임명됐다. 추 장관은 두 차례 인사를 통해 이런 기형적인 체제를 바로잡았다. ‘윤 사단’을 전국 각지에 분산 배치했다. 추 장관은 부임하자마자 검찰 인사 내용을 보고받고 ‘윤 사단’을 해체하는 인사안을 짜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윤 총장의 약점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다. 이 인사는 야권과 ‘윤 사단’으로부터 “현 정권을 겨냥한 윤 총장에 대한 보복 인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검찰 안에서는 “‘윤 사단’에 편파적인 인사를 바로잡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추 장관의 기세는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공소장 비공개 결정으로 크게 꺾였다. 추 장관은 야당 의원들의 공소장 공개 요구에 주요 내용만 간추린 자료를 만들어 넘겼다. 그동안은 공소장 사본을 통째로 넘기는 것이 관례였다. 검찰(또는 법무부)의 공소장 공개는 원칙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긴 하다. 사건이 재판으로 넘어가면 공소장을 포함한 수사기록의 처분 권한은 검찰이 아닌 재판부에 있기 때문이다. 공소장 공개 여부는 재판이 시작된 뒤 재판부가 결정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 그러나 기소 이후에는 피의사실공표 논란이 사라지기 때문에 검찰은 관행적으로 기소와 동시에 공소장을 공개해왔다. 문제는 추 장관이 하필 청와대 관련 사건에서 원칙을 따지고 들었다는 점이다. 추 장관의 결정은 기소된 청와대 관계자들의 중대한 혐의를 숨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공소장 비공개 결정으로 인한 실익도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재판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추 장관의 검찰개혁 공세가 전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윤 사단’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반개혁적 성향을 확인시킨 것은 검찰개혁 성공에 중요한 밑돌이 될 수 있다. 정권의 힘이 가장 센 정권 초기에 검찰개혁을 밀어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참여정부 검찰개혁 실패 전철 밟나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 ‘적폐 수사’를 이유로 검찰개혁을 소홀히 한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촛불’의 시대적 요구인 검찰개혁에 소홀했다. ‘정치검찰’의 원인인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축소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웠다. ‘윤석열 검찰’이 국정 농단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 비리 수사, 그리고 사법 농단 수사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잊은 탓이다. 추 장관의 검찰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검찰개혁의 주도권을 잡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에 발탁돼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강금실 전 장관의 사례는 되새겨볼 만하다. 강 전 장관은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하고 1년5개월 뒤 물러났다. 강 전 장관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당시 검찰을 개혁하는 힘이 부족했다”고 회상했다. 2011년 문재인 대통령(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함께 쓴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강 전 장관은 이렇게 증언했다. “개혁을 하려면 조직의 실태를 잘 분석해놓았어야 했고, 실제로 팀을 짜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준비를 해서 언제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까지 나와 있어야 하는 것이죠. 가서 무작정 시작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늦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정서상 1~2년만 지나면 레임덕이 오기 시작하는데 혼자 가서 1년 동안 자리를 잡고 그다음에 개혁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참여정부는 검찰개혁 준비만 소홀한 게 아니었다.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공격을 방어할 준비도 부족했다. 당시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곤욕을 치렀다. 야권을 포함해 정치권 전체가 검찰 수사의 사정권에 들었지만, 청와대가 받은 타격은 더욱 컸다. 검찰개혁에 실패하면서 지지층의 민심 이반이 뒤따랐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 내내 중수부(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정부가 도모하거나 추진하게 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정권 차원의 보복 또는 검찰 손보기라는 식의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추진력이 많이 떨어졌다.” 더욱이 대선자금 수사가 국민의 지지를 받았기에 참여정부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졌다. ‘총선만 끝나면…’ 벼르는 검찰 ‘윤석열 검찰’도 지금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다. 검찰은 총선이 끝나면 청와대를 향한 수사를 재개할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정권 후반기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레임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검찰의 공세는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검찰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 대가는 이처럼 혹독하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