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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상아탑을 넘은 녹색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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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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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생활과 생태교육을 결합한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 녹색대학의 작은 시작

사진/ 국내 첫 대안대학인 녹색대학이 내년 3월 개교를 앞두고 창립 작업에 들어갔다. 3월 23일 창립위워회 발족식 장면.
“200여개 대학에 하나를 더하려고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2003년 3월 새로운 대학 하나가 문을 연다. 5개학과 50명 안팍의 첫 입학생을 뽑을 예정이다. 대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단촐한 규모다. 그러나 품은 뜻은 그리 만만치 않다. “지금까진 없던 새로운 대학이 될 것입니다.” 2002년 전국의 대학(4년제)은 모두 196개. 이 대학 창립위원회 유병희 사무국장의 말대로라면 한국 사회는 197번째 대학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첫번째 대학 하나를 품게 되는 셈이다. 녹색대학이 이 대학의 이름이다.

기능인 아닌 전문가 양성


녹색대학은 국내 최초로 설립되는 대안대학이다.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대안교육의 물결이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거쳐 마침내 대학의 높은 문턱마저 넘어서려 하고 있다. “기존 제도교육의 역할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문적 기능인 양성에 그치고 있습니다. 대학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녹색대학은 생태적인 삶을 사는 방법의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합니다. 내면의 생명력이 충만한 개인으로 살면서 동시에 사회를 생태적 공동체로 바꾸어낼 수 있는 전문가를 키워내려 합니다.”(한면희 녹색대학 이념학제위원회 부위원장·환경정의연구소장)

녹색대학은 경남 함양군에 터전을 마련했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거봉 지리산의 끝자락인 이곳 백전면 대안리 3만여평은 이미 터고르기를 마무리한 상태다. 애초 인근 실상사의 도법스님이 공동체 터전으로 삼으려 봐둔 것을 기꺼이 소개해준 곳이라고 한다. 학교 교사로 쓰기 위해 폐교된 백전중학교 4360평에 대해서도 교육당국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해놓았다. 지난 3월23일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녹색대학 창립위원회(www.ngu.or.kr, 02-3474-7274) 발족식이 열림으로써 대학 설립에 박차가 가해졌다.

녹색대학 창립에 동참하는 이들은 크게 3부류로 나뉜다. 처음 녹색대학 창립을 발의한 이들은 강대인 대화문화네트워크 대표 등 36명으로, 녹창사(녹색대학을 창립하는 사람들)라고 불린다. 김지하 시인, 김창수 전 한빛고등학교장, 도법 실상사 주지, 문규현 신부, 박재일 한살림 회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 유재현 녹색미래 공동대표,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 이병철 귀농운동본부장, 이정자 녹색연합 공동대표, 장회익 서울대 교수, 채규철 두밀리자연학교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5년 처음 녹색대학 계획이 제안된 이래 4번의 실무모임과 3번의 토론회 등을 거치면서 창립의 기반을 다져왔다. 이밖에 녹운사(녹색대학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김조년·강석찬씨 등 113명이, 녹지사(녹색대학을 지탱하는 사람들)에 강경근·강명수씨 등 697명이 참여해 녹색대학 창립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병희 사무국장은 “녹색대학 가족들은 단순한 회원이 아니라 새로운 녹색문명을 함께 만들어가는 대안공동체의 일원”이라며 “녹지사 가족들은 개교 연도에 맞춰 2003명이 될 때까지 계속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해 개교와 함께 생명농업·녹색교육·생태건축·자연의학·녹색문화학과 등 5개학과가 선보일 예정이다. 장원 상임위원은 “각 학과별로 학년당 10명 정도의 신입생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면희 소장은 “기존 대학의 환경관련학과는 심하게 말하면 환경문제를 이용해 어떻게 또 하나의 돈벌이를 할 것인디를 가르치는 데 치우치고 있다”며 “녹색대학에선 그보다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의 새로운 진로를 설정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학제적 학습을 통해 21세기 녹색생명의 문명을 창출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려 합니다. 단순한 기술자를 키워내지 않도록 처음 2년은 대안문화적 교양을 충분히 이수한 뒤, 그 바탕 위에서 전문성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녹색대학 쪽은 “이 밖에도 외국석학을 초빙해 강좌를 개설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시대의 사표가 될 만한 분들을 모셔 허병섭강좌, 장회익강좌 등 지속적인 강좌를 개설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장벽은 재정 확보

사진/ 경남 함양군의 녹색대학 터전.
개교까지 1년가량 남았지만, 벌써부터 녹색대학을 지원하겠다는 희망자들은 줄을 잇는다. 유병희 사무국장은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지원 의사를 밝힌 이들만 200명쯤 된다”고 말했다. 대안고등학교를 다니거나 나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반 고등학교 출신들의 문의도 적지 않은 편이다. 한면희 소장은 “대안고등학교가 활성화한 것도 대안대학 설립의 중요한 기틀이 됐다”며 “대안적 사유와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 아이들에게 고등교육에서도 대안적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게 된 점이 녹색대학의 또 한 가지 성과”라고 평가했다. 장원 상임위원은 “바로 이런 점에서 녹색대학은 기존 제도권 대학의 제반 잘못과 대규모·획일·엘리트위주의 입시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대안적 대학운동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녹색대학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대학의 연구·공부와 공동체 생활을 함께 어우른다는 점이다. 한면희 소장은 “일본의 돗토리환경대학 등 환경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은 있었지만, 마을과 대학이 하나의 대안공동체로 연결돼 커가는 곳은 아마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대학 터전 3만평 가운데 2만여평은 녹색대학 공동체마을에 입주할 15가구에 공평하게 배분된다. 공동체마을에 들어올 가구는 이미 모두 결정된 상태다. 유병희 사무국장은 “서울과 경기도, 부산 등 전국에서 다음해 3월 개교에 맞춰 이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은 자치위원회를 꾸려 녹색대학과 연계해 농사·집짓기·살람살이·품앗이 등은 물론 연구도 함께 하는 대안교육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서울 청계천 상가에서 액자가게를 하는 자치위원회 총무 박정서(37)씨는 “최초로 시도되는 대학 내 공동체마을인 만큼 성공을 위해선 서로 돕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각오가 크다”며 “나도 기회가 닿으면 녹색대학의 학생이 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해 3월 부모님이 먼저 함양 터전으로 이주한 뒤, 서울의 가게를 정리하는 대로 따라 내려갈 계획이다.

착착 진행되는 듯하지만, 뜻이 높다고 길이 절로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이다. 현재 대학 창립위원회가 세워놓은 창립예산은 모두 11억5천만원이다. 학교 부지 매입비 4억원과 학교 건물 리모델링 비용 2억원, 시설과 비품비용 3억원 등으로 짜여 있다. 대학을 만드는 비용치고는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자발적 후원에 의존해야 하기에 결코 녹록한 액수가 아니다. 유병희 사무국장은 “회원 1인당 다달이 1만원씩 보내주는 회비수입과 후원회말고도 그림 전시회 등 각종 기금마련 프로젝트를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양화가 박영씨는 그림 수십점을 선뜻 기증해줬다. 지난해 10월 ‘녹색의 땅, 그 위대한 모성애’란 주제로 첫 전시회를 열었고, 오는 4∼5월께 한번 더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서울 인사동 거리엔 ‘시천주’(02-732-0276)라는 찻집을 마련해 직접 수익사업에도 나섰다. 이곳에선 채식가를 위한 먹을거리도 마련해놓았다.

“인가에 연연하지 않겠다”

사진/ 서울 서초동의 녹색대학 창립위원회 사무실. (김종수 기자)
최근엔 원종수어린이 기금 등 후원자들의 이름을 딴 다양한 기금 조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원종수어린이 기금은 위정희 경실련 회원사업국장이 아들 원종수군의 초등학교 입학을 맞아 좋은 뜻에 쓰겠다며 적립한 100만원을 종잣돈으로 조성된 기금이다. 유병희 사무국장은 “앞으로 10여개의 기금을 더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직 완전한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확보하지 못한 점도 한시바삐 풀어야 할 과제다. 한면희 소장은 “생태교양과정을 공통필수과목으로 하고, 에코페미니즘과 녹색평화학 등을 커리큘럼에 도입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대학원 과정에 녹색교육학과를 설치하는 등 점점 외연을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장원 상임위원은 “함양지역학도 커리큘럼에 넣는 등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학문연구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제도권 대학처럼 성장을 지향하는 대학이 아닌 만큼 조그만 대학으로 출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처음부터 대안대학을 지향하는 만큼 개교 뒤에도 당분간 기존의 교육제도 내로 편입되기 어렵다는 점은 그리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장원 상임위원은 “지금 당장은 시설이나 커리큘럼 등에서 교육부의 대학 설립 여건에 맞지 않는 점이 많아 인가를 받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후 이런 노력이 물줄기를 이룬다면 대안대학법이 생겨 우리 뜻을 포용하는 결과도 나오리라 본다”고 말했다. 유병희 사무국장은 “기존 제도교육의 인가 여부에 연연해하진 않을 것”이라며 “교육부가 대학 허가를 내준다면 좋은 일이지만, 꼭 인가를 받아야 좋은 대학교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허병섭 창립위원회 운영위원장(푸른꿈고등학교장)은 “대안교육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청빈을 꿈꾸고 실천하려는 사람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반성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녹색대학의 한가족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의 쳇바퀴를 벗어나 ‘나눔과 섬김과 돌봄, 그리고 배움의 터’를 만들겠다는 녹색대학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개교까진 이제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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