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지키려 나무에 올랐다
등록 : 2002-04-03 00:00 수정 :
“집 앞에 흐르는 개천과 아파트 단지 구석에 심은 나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환경의식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걸어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녹지공원이 있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를 깨친 것일까? 30대 환경운동가의 입에서 “자연과 대화를 나눴다”는 체험담이 흘러나온다. ‘대지산 지킴이’
박용신(35) 환경정의시민연대 기획조정팀장은 지난해 5월 경기 용인 죽전지역 대지산 자락에서 ‘나무 위 시위’를 시작한 지 열흘 만에 나무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네게 무거운 짐이 돼서 미안해. 하지만 너와 네 친구를 살리기 위해 올라왔어. 조금만 참아줘.” 가지를 흔들어대며 무섭게 자신을 떨쳐내려하는 상수리 나무의 저항을 견뎌내던 박 팀장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천막 주변을 찾아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인사를 건네는 청솔모와 이름모를 새들과 귀엣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건설교통부와 토지개발공사에게 마침내 녹지보전 결정을 내린 5월7일을, 그는 ‘장군아저씨’라고 이름까지 붙여주며 17일 동안이나 머물던 늙은 상수리나무의 생일로 삼았다.
지난 3월30일 박 팀장은 ‘나무 위 시위’를 벌이던 곳을 다시 찾았다. 가족나무심기행사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200여평 규모에 목련과 왕벚나무 60그루를 심었다. “단지 나무를 심는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무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한 그루 한 그루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자그마한 노력이 미래 세대를 위해 숲을 가꿔나가는 일로 이어집니다.”
이날 행사로 대지산 일대를 ‘시민참여형 자연공원’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첫단추를 끼운 셈이다. 이날 심은 나무도 ‘방음림’을 원하는 주민들의 요구에 맞춰 2∼3m쯤 자란 것들로 골랐다. 앞으로 산책로와 운동시설, 곤충서식지와 생태연못 등도 주민들의 참여로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주민들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생활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개발은 모두 난개발”이라고 말하는 박 팀장은 택지개발 시행계획까지 나왔다가 주민들의 힘으로 취소시킨 대지산지키기운동의 경험을 담은 백서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4월5일 식목일에는 서울에서도 가족나무심기 행사가 열린다. 서울 노원구청 건너편 당현교 아래에서 오전 10시부터 갯버들·산수유·라일락·산철쭉 등 2천주가량의 묘목이 ‘입양’될 예정이다. 준비물?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만 넉넉히 가져오면 된단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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