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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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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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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용 기자)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첫 경보는 오산에서 울린다고 합니다. 현대전은 전투기의 발진에서 시작하는데, 하늘을 감시하는 공군작전사령부의 중앙방공통제소가 오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하벙커로 요새화된 중앙방공통제소를 얼마 전에 가봤습니다. 한반도와 주변 상공 비행물체의 움직임을 수십대의 모니터 스크린을 통해 구역별로 나눠 감시하는 곳입니다. 긴장감 속에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24시간 영공을 지키는 군을 보면 절로 숙연해집니다.

하지만 통제소는 우리 군만의 것이 아닙니다. 미군이 같이 근무를 합니다. 사실 통제소 내부는 미군기지 냄새가 물씬 나며, 미군의 조기경보기 정보에 상당히 의존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통제소는 물론 공군작전사령부 자체가 광활한 오산 미 공군기지의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방에서 미국의 존재, 미군의 그림자를 실감했습니다. 이튿날 포항에서 본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센 파도를 헤치고 상륙작전을 하는 군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오키나와에서 발진한 이지스급 구축함과 첨단 상륙장비로 작전을 주도하는 미군의 무게가 다시 착잡하게 교차됐습니다.

우리 군에 미군이 있고, 미군 속에 우리 군이 있는 이러한 상황은 한-미군사동맹에서 연유합니다. 주도권을 잣대로 정확히 표현하면 미-한군사동맹이 될 것입니다. 미국은 작전뿐 아니라 한국군의 무기체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즐겨하던 2인3각 달리기를 떠올려봅니다. 둘이서 한발씩 묶고 손잡고 뛰는 경기말입니다. 힘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동맹은 족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한 2인3각 달리기는 뒤뚱거리지만 마음놓고 뜁니다. 애정과 신뢰가 전제돼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관계는 다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봄날씨처럼 바뀌는 것이 나라 사이입니다.


속을 모르는 우람한 람보와 발을 묶고 같이 뛰어야 한다면? 살길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람보가 정의의 슈퍼맨이라고 믿거나 개과천선해 슈퍼맨이 되기를 바라는 길이 있습니다. 아니면 묶인 발을 풀고 홀로 뛰거나 끈을 느슨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F-X 결정을 통해 군 수뇌부는 흔들림 없이 앞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그런 판단에 반기를 듭니다. 친미·반미를 떠나, 간단한 셈으로도 계산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움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군이 초등학생도 아니고 웬만큼 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발이 꼭꼭 묶여 있다니.

그 족쇄가 한-미군사동맹이라는 불평등협약 이전에, 미국과의 결별을 상상도 못하는 군 수뇌부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 물어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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