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21일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한국 부모들이 일본 요코하마의 `K2인터내셔널' 부모들과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주상희 공동대표 제공
아들의 상황이 낯설진 않았다. 일본 유학 시절 언론에서 봤던 히키코모리 생활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었기에 어디에서도 대응책을 구하지 못했다. 주씨가 홀로 맞아야 했던 답 없는 혼란은 다른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이 겪는 궤적과 일치했다. “정신과, 심리상담센터를 전전했다.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우울증약을 하루에 한 움큼씩 먹었지만 아들의 상태는 나아지질 않았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일본 히키코모리 자립단체 K2인터내셔널(K2)이 한국에도 있다는 걸 알고 아들을 그곳에 보냈다. 아들은 한동안 K2에서 운영하는 직업 프로그램 ‘돈카페’에서 일하기도 했다. 설립 전부터 은평구·서울시 제안서 제출 2017년 주 대표 아들의 사연이 기사화하면서 K2엔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한국에도 은둔형 외톨이가 있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이 모이는 계기가 됐다.” 간절함에 K2를 찾은 부모들은 2018년부터 ‘열쇳방’ 모임을 해왔다. 주 대표는 “모임에 나온 부모들은 자신이 육아를 잘못해서 아이가 은둔하게 됐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입시 경쟁, 왕따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정부에 대책을 마련하고, 지원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보다 먼저 청년들의 고립을 사회문제로 겪은 일본에는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단체인 ‘KHJ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가 있다. 이 단체는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히키코모리 가족 실태를 조사하고, 당사자와 가족의 사회적 고립을 막으려고 상담을 지원한다. 이뿐만 아니라 정책까지 제안한다. 한국 협회의 롤모델이다. 2019년 연말엔 같은 경험을 하는 두 나라의 부모들이 화상통화를 했다. 주 대표는 “일본 히키코모리 이슈에선 민간이 주도하고 관이 뒤따르는 형식이었는데, 한국은 광주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가 통과된 뒤 부모 모임이 생기는 것을 보고 일본 부모들이 의아해했다. 협회에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을 조언했다”고 말했다. 협회는 발족 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2019년 말엔 김미경 은평구청장에게 제안서를 냈다. 은평구에 있는 빈집을 지원해주면, 그 공간을 활용해 심리상담을 하고, 관계맺기를 훈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이다. 밤늦게까지 은둔형 외톨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통해 사회와의 접촉면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김미경 구청장은 서울시의원이던 2017년 은둔형 외톨이 지원 방안을 담은 조례를 발의하기도 했다. 비슷한 내용의 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해, 2019년 12월14일에는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과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났다. 이 만남에서 서울시가 보유한 공간을 은둔형 외톨이들의 공동생활 공간으로 제공하는 등의 논의가 나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겨레21>에 “당시 만남에서 시장은 은둔형 외톨이는 기성 어른들의 잘못이기에 공공의 도움이 필요하며 은둔형 외톨이들의 자립을 지원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서울시 청년청은 지난해 성북구와 함께한 고립청년 밀착지원 사업을 올해는 2개 구로 늘릴 예정이다. “부모들 정신건강도 중요” 현재 협회 회원으로는 2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은 충남 천안, 대구, 부산에서도 살지만 주로 수도권에 거주한다. 참여자가 늘어 지역에서도 모임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협회는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지원뿐 아니라 가족을 향한 지원도 함께 할 예정이다. “아이가 아프니까 부모들도 함께 아프다. 은둔형 외톨이는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들의 정신건강이 중요”(주 대표)하다.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유아교육까지 공부한 주 대표는 앞으로 협회 운영 계획을 이렇게 말했다. “엄마들이 울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한다. 물어볼 데가 없으니까 나한테 연락한다. 그런 부모들에게 협회가 비빌 언덕이 되면 좋겠다. 참여하는 부모 대부분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 서툴지만, 당사자들의 가족이 겪은 현실적인 문제를 공론화해나가겠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