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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판사에서 공무원 찍고 변호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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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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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승화 기자)
“바깥으로 나가면 거꾸로 공정거래위원회 하고 싸우는 일도 많겠죠. 하지만 어디에 있든 각자 맡은 일과 역할을 열심히 하면 전체적으로 조화된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몸담고 있던 조직을 떠나 이제는 간간이 그 조직을 상대로 싸우게 된 임영철 변호사(45)는 바뀐 처지를 ‘역할론’으로 변호했다. 그는 지난 4월2일까지만 해도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국장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를 명예퇴직하고 로펌 ‘바른법률’로 옮긴 그는 이제 정부기관을 상대로 한 기업들의 송무나 법률자문을 맡아야 한다.

지난 81년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가 정부관료가 된 건 지난 96년. 서울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당시 법무심의관을 뽑던 공정위에 판사직을 버리고 자원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인 경제를 걸러진 상태가 아닌 현실로 겪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13년간 사법부에서 숱한 사건을 맡았지만 법원에 들어오는 사건은 수사단계에서 자료화되면서 가공된 것들입니다. 공정위 역시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는데, 법원과 달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생생하게 볼 수 있죠.”

현직 판사가 정무, 별정직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으로 옮긴 사례는 그가 ‘1호’였고 그 뒤에도 없었다. 물론 직급도 강등됐다. 1급 대우를 받는 고법판사보다 공정위 법무심의관은 3급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변신은 잠깐의 ‘외도’가 아니었다. 공정위에 몸담았던 5년 반 동안 ‘미스터 공정위’로 불릴 만큼 실력과 인관관계 모두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의 원만한 품성이 호감을 사 공정위 직원들이 선출한 ‘바람직한 공정인상’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가 다시 법조계로 돌아간 이유에는 좌절감이 배어 있다. “처음에는 여기 공정위에서 끝장을 보려고 왔죠. 그런데 법률적인 전문성과 소신을 펼치기 어렵더군요.” 그를 괴롭혀온 좌절감과 갈등은 ‘정부지배구조’의 전근대성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한다. “기업지배구조 개혁처럼 정부의 지배구조도 변화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이사회·주주 등이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하는데 총수가 멋대로 휘둘러 부작용이 생기듯, 정부도 대통령, 장관, 실무자, 위원회 등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못한 데서 ‘정책 실패’가 생기는 겁니다.” 정부지배구조 역시 특유의 역할론으로 정리한 그는 그동안의 관료사회 경험을 정부지배구조에 대한 책으로 곧 펴낼 예정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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