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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를 제대로 검증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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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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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의 ‘박근혜 지지’논란에 대해 박근혜 의원이 처음으로 털어놓은 생각

사진/ (이용호 기자)
한나라당 탈당 전후로 박근혜 의원(50·대구 달성군)은 일약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그가 반이회창을 외치며 당을 박차고 나오자 한나라당은 삐걱거렸고,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정치 노장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전혀 뜻밖의 곳에서도 그를 둘러싼 소란이 한창이다.

사건의 발단은 페미니스트 최보은(43·월간 프리미어 편집장)씨가 월간 <말> 3월호에 “박근혜가 출마하면 그를 찍겠다”는 충격 지지선언을 하면서이다. 이어 4월호에는 찬반양론이 불붙었다. “여성이란 ‘마이너’의 지지는 진보이다”(장정임 여성문화동인 살류쥬 전 대표)라는 제목의 최씨 옹호글과 “‘우연히’ 여성인 정치인을 지원할 이유 없다”(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다시 지역주의 망령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김정란 상지대 교수)라는 제목의 반박문이 나란히 실렸다. 이를 계기로 디지털말(www.digitalmal.com)과 여성신문사(www.womennews.co.kr), 살류쥬(www.salluju.pe.kr)의 토론방도 연일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최씨의 주장을 지지한 사람은 장 전 대표뿐이지만, 논란은 다양한 물결 무늬를 그리며 퍼져나가는 중이다. 박근혜 지지냐 아니냐를 넘어,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전략전술들이 와글와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박근혜 의원은 어떻게 생각할까? 3일25일 전화 인터뷰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본인을 둘러싼 논쟁을 보고 느낌이 어떠한가.


잘 읽고 있다. 건설적인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여성이니까 관심을 갖고, 또 여성정치인 수가 워낙 적다보니 그에 따른 의견들이 많은 것 같다.

박 의원은 특별히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펴거나 비전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런 까닭에 여성 대표로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내 스스로 여성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여성정치인이라고 해서 여성 문제만 갖고 일할 수는 없다. 노력하고 있다는 말, 지켜봐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본인은 여성이라는 정체감을 얼마큼 갖고 있는가.

나 자신이 여성인데, 더 뭘 설명하겠는가. 그 자체로 여성의 편이 되지 않겠는가.

박 의원에 대한 비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아버지에 대한 퇴영적 향수를 가진 사람들을 지지기반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려는 알고 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거 부인하지 않는다. 천륜인데 그것을 어떻게 부인하겠는가. 다만 내가 박정희의 딸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어떻게 정치를 해나가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잘못하면 당연히 국민의 지지를 못 받을 것이고.

공식적으로 아버지의 공과에 대해 인정하긴 했지만, 말뿐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기념관 건립 국고지원 문제에 대해서 딸인 박 의원께서 ‘아직 논란이 많으니 미뤘으면 좋겠다’는 뜻이라도 밝힐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이야기할 문제가 사실 못 된다. 기념관 건립 자체도 나와 무관하게 발의됐고, 각계의 원로들이 지지해 대통령 승인 아래 진행된 것이다. 비록 유족이지만 그분들 뜻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98년 보궐선거, 2000년 총선을 거치면서 정치입문 4년 만에, 지금은 비록 탈당했지만 한나라당 부총재직에 오를 정도로 정치적인 파워를 과시했는데, 본인이 단기간에 성장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현실정치에 뛰어든 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국민을 대변한다는 위치를 잊은 적이 없다. 그만큼 노력했고 거기에 따른 결과를 얻은 것이라 본다.

일각에서는 박 의원이 오랫동안 퍼스트레이디로서 정치수업을 받아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평하는데.

청와대 생활은 항상 나라를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고 배웠지만, 청와대를 나와서는 전혀 반대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배웠다. 나를 공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웃음) 청와대를 나온 뒤 결코 쉬운 시간을 보낸 게 아니다.

이번 논쟁이 벌어진 계기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지는 정치권에서 특정 정치인에게 페미니스트의 지지는 양날의 칼이다.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내가 본 페미니즘은 편향적인 게 아니다. 남녀의 위치를 떠나서 합리성에 기댄 생각들이다. 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목소리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정치인을 지지하는 목소리 역시 여성 고급인력이 활용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점점 그렇게 돼야 하고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견은 어떠한가.

아직 정치권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불이익이 존재한다. 내 경우에 부총재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왜 여성이 선출직에 출마하냐”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언론의 시각 역시 그런 사회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여성이 여성을 지지하는 것은 이런 분위기에서는 당연하다고 본다.

본인이 아무리 여성 정책과 비전을 갖고 있어도 쉽게 움직이겠느냐는 우려가 많다. 예를 들어 박 의원의 지지기반인 경북의 보편적 정서는 여성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재작년 호주제 입법청원이 들어왔을 때, 당시 한명숙 의원과 이미경 의원 등과 함께 국회에 소개하며 서명도 했다. 호주제 폐지에 대한 내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정치인은 지지기반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 일단 신념이 선 이상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면서 눈치보지 않아야 한다.

잠재적 대권후보로 거론되는데 아직 대권 도전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나.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 많이 생각하고 노력하는 중이다.

대선은 온갖 정책들이 개발되는 시기이다. 당면한 여성 정책을 세 가지만 꼽자면.

반가운 질문이다. 우선, 호주제를 필두로 남녀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두 번째로 현 정부에서도 추진하고 있지만 고용평등 정책은 물론, 출산·육아 정책을 발전시켜 여성이 불이익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엠(M)자 곡선이라고, 한창 일할 나이에 원치 않게 일을 그만둬야 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 번째로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 할당제를 통해 수가 늘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제도 자체를 여성 참여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

박 의원은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에서 아버지와 남편의 대를 이어 부상한 여성정치인들처럼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 배경을 가진 여성지도자들은 결과적으로 여성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한 정치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이 그들과 차별성이 있다고 보는가.

그들이 단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만 정치지도자로 나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란 터에 본인이 할 몫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나선 것이라고 본다.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아내라고 해서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잘잘못이 있지만 그들의 공과는 그 사회의 수준이었다고 본다. 나는 사심 없이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 나라들보다 의식이나 제도 모두 발전해 있고 정치적 패러다임도 바뀐 지 오래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일을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들과 같기도 하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논쟁에 반색을 표했고, 자신을 지지하는 것이 여성의 이해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펼쳐보이는 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정치인 박근혜를 제대로 검증하고 평가해 달라”는 주문도 아끼지 않았다. 이번 논쟁이 한바탕 소란으로 그칠지 아니면 발전적으로 이어질지 그의 행보를 지켜보며 판단해야 할 것 같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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