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14일 전북 익산 장점마을 주변 비료공장 식당 건물 밑을 주민이 긴 막대기로 찔러보자 검은 액체가 묻어나왔다.
비료공장은 2017년 4월에야 가동을 중단했고, 그해 11월 문을 닫았다. 하지만 2018년 12월14일 <한겨레>가 장점마을에 취재 갔을 때도 공장은 심각한 오염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비료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메스꺼운 냄새가 두통을 유발했다. 이 공장에서 10여 년 동안 일했다는 이장 김인수(67)씨가 당시 공장 앞마당을 덮은 비닐을 들춰 보이며 말했다. “6~7년 전 주변 지역 공장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유독물질을 이틀 동안 이곳 마당에 묻었고, 비가 오면 냄새가 심하게 나고 마을로 흘러들 수도 있어 비닐로 덮어놓았다. 질 나쁜 범죄행위로, 폐기물 등을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 “송장 냄새 같은 고약한 냄새…” 남편과 아들을 각각 담낭암과 위암으로 잃은 마을 주민 이아무개(80)씨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서 있지 말고 드러누워 있으라’고 자주 얘기했다. 방바닥에 누워 있으면 고약한 냄새를 조금이라도 덜 느꼈기 때문이다”라고 악취의 심각성을 증언했다. 최재철(57)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역시 “(2018년 12월 초) 익산시에서 조사 나왔을 때 송장 냄새 같은 고약한 냄새를 많이 맡아, 저녁에 귀가한 뒤 쓰러져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2016년 ‘물고기 떼죽음’ 이후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해 9월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집단 암 발병’을 이슈화했다. 2017년 4월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다. 그해 7월 환경부 환경보건위원회에서 이를 수용해 역학조사를 했다. 12월에는 환경안전건강연구소가 환경부 의뢰를 받아 1년 일정으로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시작된 역학조사는 주민들의 뜻과 다르게 흘러갔다. 공장 내부에서 시료를 채취하지 않는 등 연구팀이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조사를 한다는 불만이 새어나왔다. 2018년 7월18일 익산시청에서 열린 역학조사 중간보고회에서 불만이 ‘폭발’했다. 중간보고회는 주민 30명과 전문가만 참여한 채 열렸다. 주민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역학조사 중간보고회 내용이 암 발병의 원인을 찾는 데 있지 않고, 7개월여 동안 진행한 일방적인 조사 과정에 대한 설명에 그쳤다. 이에 기반한 최종 조사 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 특히 지금까지 조사 과정에 주민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고, 중간보고회 이전까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하는 등 발병 원인을 알아내기보다 생색내기식 조사로 알맹이 없는 보고회다.” 당시 최재철 주민대책위원장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정부 대책이 없다. 조사를 맡은 용역기관은 용역을 의뢰한 환경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갑을관계이기에 환경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역학조사 기간은 애초 2017년 12월8일에서 2018년 12월7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추가 조사에 따라 인과관계와 원인 분석 등으로 일정이 늦어졌다. 마침내 지난 6월20일 역학조사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비료공장 가동과 마을 주민의 암 발생 사이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추정’만 했다.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은 다시 5개월간 ‘투쟁’을 이어갔다. 환경부가 11월14일 같은 자료에 대한 최종 발표회에서 “금강농산과 주민 암 발생 간의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못박은 것을 ‘끈질긴 투쟁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점마을은 한국 정부가 환경오염과 비특이성 질환인 암의 역학적 관련성을 처음 확인한 사례다. 비특이성 질환은 특정되지 않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 질병을 말한다. 그만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고 모호하다. 하지만 환경부도 이번에는 “마을 주변 비료공장에서 배출한 유해물질과 주민들의 암 발병 간 역학적 관련이 있다는 것이 조사를 수행한 연구진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건조과정에서 발암물질, 암 발병률 2∼25배 장점마을에 대한 역학조사 용역을 맡은 환경안전건강연구소 김정수 소장은 “주민 청원으로 환경부가 실시한 주민건강영향조사 14건 중에서 오염원(공장)과 주민 암 발생 간의 역학적 관련성을 판단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수년 전 전북 남원시 이백면 내기마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내기마을에선 인근 아스콘(아스팔트혼합물) 공장으로 인해 집단 암 발병 의혹이 제기됐다. 약 400쪽에 이르는 중앙암역학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직접적 연관성은 규명하지 못했다. 내기마을에선 “주변 공장이 암 발병에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모호한 결론이 났다. 이번에 환경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금강농산은 비료관리법에 의해 퇴비로만 써야 할 연초박을 불법으로 유기질 비료 생산 공정인 건조 과정에서 썼다. 모의시험 결과, 연초박 건조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와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 배출이 확인됐다. 공장 가동 중단(2017년 4월) 1년이 넘은 시점에 사업장 바닥과 벽면, 원심집진기 등 비료공장 내부와 장점마을 주택에서 채취한 침적 먼지에서도 같은 발암물질이 나왔다. 담배특이니트로사민, 다환방향족탄화수소 중 일부 물질은 국제암연구소 기준 1군 발암물질로, 노출될 경우 폐암·피부암·간암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점마을 남녀 전체 암 발병률은 갑상샘을 제외한 모든 암, 간암, 기타 피부암, 담낭·담도암, 위암, 유방암, 폐암에서 전국 표준인구 집단보다 2~25배 많았다. 불법 유기질 비료 생산 외에, 익산시는 2018년 12월4~5일 이 비료공장에 폐기물 조사를 벌여 불법 폐기물 매립도 확인했다. 시는 조사를 위해 공장 앞마당과 식당 내·외부 등 모두 5개 지점을 굴착했다. 최대 4m까지 파들어가, 건설폐기물인 아스콘과 적벽돌, 폐타이어, 슬레이트 등이 있음을 확인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악취와 지하수 오염에 시달리고 주민들의 숱한 민원 제기가 묵살당한 2001~2017년, 주민 99명 가운데 22명(23건, 국립암센터 등록 기준)이 암에 걸렸고 그중 14명이 숨졌다. 18년 만에야 지난한 투쟁의 한고비를 넘었지만, 장점마을 주민들이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피해 구제를 받기엔 현행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너무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배상액이 적고 구제 대상이 제한적이며, 민사소송에서 이기면 종전에 도움받은 금액을 반납해야 하는 등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대상자가 대부분 노인이어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재판을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다. 이 때문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주민들은 금강농산과 이 공장에 연초박을 공급한 케이티앤지를 대상으로 바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소송 대상에는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익산시·전북도·환경부도 포함됐다. 암 이외 질환자와 주변 주민 파악도 장점마을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익산시의회 임형택 의원은 “2001년 공장 가동 직후부터 주민들이 꾸준히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적극적인 단속에 나서야 할 행정에서 2016년 이 문제가 이슈화하기 전까지 악취 측정을 제외하고는 단 한 건의 행정처분이 없었다. 관리·감독 소홀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익산 지역 17개 시민사회단체는 4월18일 시민 1072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결과는 12월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익산시와 전북도는 이미 장점마을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환경부는 “지방정부를 감독하는 중앙정부도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케이티앤지는 연초박을 적법하게 넘겼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장점마을 주민들은 호소문에서 “(정부 발표와 달리) 지금까지 33명이 암에 걸려 17명이 사망했고, 16명이 투병 중에 있다.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하지 않은 주변 마을까지 합하면 암에 걸린 사람은 더 많다. 지금은 암에 걸리지 않았지만 많은 주민이 피부병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앞으로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살고 있다”고 걱정했다. 현재 장점마을 주변 주민들도 비료공장으로 인해 암환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익산시는 “보건소에서 주변 마을의 암 발생자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해당 주민들에게 치료비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비료공장 주변 마을 주민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익산=글·사진 박임근 <한겨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