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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국민경선장의 ‘붉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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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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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돌풍 진원지로 꼽히는 ‘노사모’… 여론의 힘으로 정치를 바꿔낼 건가

사진/ "국민경선을 정치축제로." 노사모 회원들이 민주당 대선후보 울산 경선장 주변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용호 기자)
얼굴에 그림을 그려넣었다. 흰색과 붉은색, 파란색으로 오른쪽 뺨에 태극무늬를 담았고, ‘하트’ 모양에 느낌표를 더해 왼쪽 뺨을 치장했다. 목에 두른 수건에 절로 흥이 나는지, 곁에 선 이들과 어깨를 걸고 ‘파도타기’에 나선다. ‘짝·짝·짝·짝·짝’ 손뼉까지 쳐가며 소리높여 외친다. ‘대-한-민-국?’ 잘못 짚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벌어지는 곳이면 온 나라 어디든 달려가 신명나게 그들만의 한판 축제를 벌이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노사모). 이들을 보면 왠지 월드컵 공식응원단 ‘붉은 악마’가 떠오른다. 방송작가로 일하다 지난해 9월부터 아예 상근활동에 나섰다는 정연승 노사모 사무처장도 “국민경선은 기본적으로 유권자가 직접 참여하는 하나의 정치축제”라며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회원들은 저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마음껏 이 축제를 즐긴다”고 말한다.

기존 사조직과 구별되는 자발적 참여


지난 2000년 4·13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민주당 노무현 고문의 ‘팬’을 자처하는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태동한 노사모는 이후 노 고문이 소신발언으로 “사고를 칠 때마다” 회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경선이 시작된 뒤부터는 하루 700∼800명씩 폭발적으로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3월25일 현재 해외를 포함한 29개 지부에 1만9천여명이 모인 거대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런 노사모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사조직’ ‘팬클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김진향 노사모 국민경선특별대책위 상임위원장은 “기존 정치인들의 사조직과 동일시하는 데 분노마저 느낀다”고 말한다. “아무런 의무규정도 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한 자발적인 선거운동을 벌이는 것을 기존 정치권에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사모는 노무현 후보 선거캠프에 어느 정도 협력하기는 하지만, 노사모의 활동을 놓고 간섭하거나 지시하려는 경우 반발하는 모습이 경선장 곳곳에서 여러 차례 목격되기도 했다.

회원들의 연령층도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데다, 인터넷 홈페이지(www.nosamo)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경선장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통제불능’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노 후보 선거캠프는 물론 노사모 지역 대표들의 주문에도 ‘맘에 들지 않으면’ 회원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3월16일 광주지역 경선에서는 한 회원이 노무현 고문을 지지하는 광고가 실린 <한겨레> 700여부를 ‘자발적으로’ 경선장 입구에 갖다놨다가 민주당 선관위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애초 정치인 노무현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지만, 경선을 거치면서 “개혁적인 후보는 누구나 지지가 가능하다”는 쪽으로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도 나온다. 노사모 회원 박아무개(41·회사원)씨는 “지방선거에서도 개혁적인 후보에 대한 지원활동을 벌이자는 제안이 일부 회원들에게서 나오면서 폭넓은 반향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 경선에도 참여해 개혁적인 후보를 지원해주자”는 주장까지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쯤 되면 정치인 노무현의 팬클럽 노사모의 활약은 일반적인 ‘팬덤 현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일까? 노사모의 ‘극성스런’ 활약상에서 서태지 팬클럽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특정 가수에 대한 지지를 넘어 대중음악계를 옥죄는 폐단으로 지적돼온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운동을 벌인 서태지 팬클럽처럼, 노사모 회원들도 정치 무관심층에게 “와서 함께 즐기며 정치를 바꾸자”고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거대조직으로 탈바꿈… 정치권 줄서기 양상도

물론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동연 문화개혁시민연대 사무차장은 “노사모는 386세대가 자신들이 꿈꿔온 세계에 대한 정치적 희망을 특정 정치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며 “여전히 전근대적 방식의 금권·지역선거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노사모의 활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사모 안팎의 제약도 눈에 띈다. 당원이 아닌 지지자의 선거운동을 금하고 있는 등 선거법 관련 규정은 노사모의 활동에 근본적인 제약으로 남아 있다.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주변의 질시 어린 눈질이 따가워진데다, 벌써부터 노사모를 디딤돌 삼아 정치권에 줄을 서려는 이들이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급격히 늘어난 회원들이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노사모 관계자는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여론의 힘을 노사모라는 자생적 모임의 느슨한 틀로는 감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민주당 대선후보가 결정되는 4월27일 이후를 대비한 조직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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