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나무에 햇볕 한줌을…
등록 : 2002-03-27 00:00 수정 :
서울 서초구청 공원녹지과
이영교(41) 주임은 요즘 구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여기저기 조경관리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고아원장을 겸하고 있다. 공무원이 무슨 고아원을 운영하느냐고? 바로 ‘나무고아원’이다. 날씨가 풀리고 재건축이 많아지면서 나무 고아가 많이 생기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서초구는 오래 된 단독주택이 많은 곳입니다. 재건축할 때 주민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수십년씩 자란 나무를 어떻게 처리하나 하는 것이죠.” 나무고아원은 이런 나무를 맡아주는 곳이다. 다시 찾아갈 사람이라면 자비로 나무고아원에 나무를 옮겨 심었다가 언제든 되찾아갈 수 있다. 아예 기증할 것이라면 구청에서 사람이 나가 고아원으로 나무를 옮겨간다. 나무고아원에 맡긴 나무들은 학교나 공원 등 적절한 곳으로 다시 옮겨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서울시가 나무고아원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98년부터다. 하지만 터 확보가 되지 않아 나무고아원을 제대로 운영하는 곳은 서초구뿐이다. 서초구는 지난해 반포동에 2만여 그루를 심을 수 있는 3천평 규모의 터를 마련했다. 이 주임은 “그러다 보니 다른 구에서도 나무고아를 맡아달라고 서초구로 연락하곤 한다”고 말했다. 현재 나무고아원에서 맡아 기르는 나무는 1200여 그루가량이다.
서초구는 올해 하반기에도 나무고아원 터를 4500평가량 더 늘릴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은 나무고아원의 운영 취지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 어려운 일도 많다. “며칠 뒤에 이사한다면서 당장 나무 뽑아갈 수 있겠느냐고 전화하는 분들도 있어요. 좀 미리 연락해주면 좋을 텐데요.” 나무를 옮겨 심기 곤란한 여름철에 연락을 해오거나, 괜찮은 나무는 다 뽑아가고 처치곤란한 나무만 고아원에서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이 주임을 난감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자비를 들여 나무를 기증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지난해 방배동에서 58필지를 재건축했는데, 건축주가 3500만원을 들여 나무를 고아원으로 옮겨 기증한 적이 있어요. 아마 나무들을 값으로 치면 3억원어치는 될 겁니다.” 이 나무들은 서울시 곳곳에 심어져 훌륭하게 재활용됐다.
그는 요즘 서초전자고등학교 등 관내 6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를 ‘공원화’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학교의 담장을 허물고, 나무를 심어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자는 것이다. 공원녹지 담당 공무원 18년, 그의 꿈은 서울을 조금이라도 푸른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