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민원실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에서 민원인들이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대를 빼닮은 강압적인 조직문화가 부서에 음습하게 스며들었다. 주임만이 아니라 사원들도 폭언과 멸시에 가담했다. 한 사원은 태연씨를 향해 “야 시발, 안 뛰어가고 뭐하냐. 니 또 딴생각했지? 하, 시발”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원은 가래침을 뱉으면서 목살을 꼬집고 머릿속에 생각이 있냐고 비난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느냐고, 군대는 갔다온 게 맞냐고, 목소리가 왜 이렇게 개미 새끼만 하냐고 소리쳤다. 근무 중 휴대전화를 걷어가서 이런 폭언은 녹음하지는 못했고, 노트에 기록했다. 부서에 배치된 지 두 달, 출근 전날 밤이면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청할 수 없었던 태연씨는 수면유도제를 복용해 간신히 잠이 들곤 했다. 방음이 잘되지 않는 낡은 회사 기숙사 때문인가 싶어 돈을 주고 원룸에서 살기 시작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수면유도제도 잘 듣지 않았다. 수차례 따귀 맞은 동료는 9개월 만에 퇴사 태연씨는 선배로부터 따귀를 얻어맞고 눈물을 흘린 사원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부서에서 도는 이야기는 폭행 가해자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눈물이나 흘리는 남자 같지도 않은 남자’로 비아냥거리는 분위기였다. 수차례 따귀를 맞은 피해자는 결국 9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같은 부서에서 신입사원 11명 중 6명이 단체로 사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만둔 직원이 인터넷카페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에 ‘7개월 근무 후 퇴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폭력적인 조직문화를 고발하기도 했다. 스트레스는 불면증, 우울증, 적응장애, 공황장애로 이어졌다. 견디다 못한 태연씨는 부서 내 상급자인 파트장을 찾아가 부서 변경을 요청했다. 하지만 파트장은 부서를 바꿔주지 않았다.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란 태연씨는 주임을 찾아가 그동안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했다. 주임이 음성파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태연씨는 폭언을 기록해놓았다고 말했다. 해병대에서 폭행한 병사가 그 행위를 녹음한 것이 없었는데 노트에 적어놓은 걸로 헌병대가 조사해 폭행 병사를 영창에 보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 공장에서 태연씨가 해병대에서 선임들을 때려 영창에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이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따돌렸다. 태연씨는 마지막으로 공장장을 찾아가 폭언 사실을 공개하고 부서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공장장은 부서 이동을 원하는 사람이 많고, 주임이 태연씨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길들이려고 그러는 것이니 참으라고 했다. 태연씨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를 찾아가 폭언 노트를 보여주고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그런데 신고센터가 비밀 보장을 하지 않아 부서에 소문이 퍼졌다. 태연씨가 출근하자 선배 사원은 “어딜 그렇게 들쑤시고 다니냐, 죽여버린다”고 협박했고, 주임은 그를 업무에서 배제해 12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했다. 회사는 1년이 되기 직전 태연씨와 계약을 해지했다. 스스로 그만둔 직원을 제외하고 ‘일학습근로자’로 계약한 79명은 모두 정규직이 됐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신입도 높은 점수를 받아 정규직이 됐고, 쇳물을 쏟아 생산이 중단된 인턴도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태연씨만 제외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던 지난 3월, 태연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법이 조금만 더 일찍 시행됐더라면 태연씨는 어떻게 됐을까? 고통 속에 신고했으나 끝내 버려진 정부가 2월 발행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에 이 기업은 ‘직장 내 괴롭힘 대응 우수 기업 사례’로 소개됐다. 예방 활동으로 신년 최고경영자(CEO) 메시지를 통해 윤리경영을 강조하고, 전 임직원이 온라인상으로 윤리규범을 읽고 직접 성명을 기입하는 서약을 했다. 예방지침을 제정·시행하고, 전 직원에게 예방교육을 하고, 소속 직원을 넘어 그룹사와 외주사까지 괴롭힘 설문조사를 한다. 회사 누리집에 직장 괴롭힘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신고·제보자의 신분 노출이 가능한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시 징계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다고 했다. 감사조직인 정도경영실의 임직원은 연 2회 ‘신고자 신분 보호 서약식’을 한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대응 우수 기업’에서 태연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받다가 신고했으나 신분을 보호받지 못했고, 끝내 버림받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 사회의 못난 갑질은 이제 세계적 수치가 됐다”며 “갑질은 그 갑이 이끄는 조직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손상하고 조직 운영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태연씨가 당한 직장갑질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지 이낙연 총리에게 묻고 싶다.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후원계좌 010-119-119-1199 농협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