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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날두하다

설렁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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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2 15:32 수정 : 2019-08-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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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신조어 사전]

날두하다’

동사: 출근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다

명사형: 날강두

유의어: 월급 루팡하다

예문: 비도 많이 오는데 그냥 날두하고 싶다

오늘 완전 날두했잖아

지금 날두 중이야


누리꾼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새 유행어다. 유행어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에서 뛰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

7월26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선발팀(팀 K리그)과 친선경기를 위해 호날두는 한국을 찾았다. 호날두가 2007년 맨체스터 유나이트 시절 한국 땅을 밟은 뒤 12년 만에 온다는 소식에 축구 팬들은 한 달 전부터 들떠 있었다. 7월3일 판매에 들어간 경기 티켓 6만5천 장은 2시간 만에 매진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호날두는 최소 45분을 뛰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팬들이 몰려들어 경기장 주변은 북새통을 이뤘다. 정문 입구에는 미리 호날두가 탄 버스를 기다리는 팬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이날 오후 1시 인천공항에 들어올 예정이었던 유벤투스 선수들의 비행기가 두 시간 가까이 늦게 도착하면서 일정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팬 사인회는 취소됐고, 호날두와 선수들은 경기장에 경기 시작 예정 시간인 8시를 넘겨 도착했다. 경기는 9시께에야 시작했다.

애태우며 기다린 팬들의 시선을 호날두는 모른 척했다. 그는 몸을 풀러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고, 경기 내내 벤치를 지켰다. 관중은 후반전 중반까지 “호날두”를 연호하며 그가 경기장에서 뛰기를 고대했지만 끝내 나서지 않았다. 후반전 중반이 넘어가자 팬들은 “메시”를 외치며 호날두에게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 나선 유벤투스 사리 감독은 “호날두가 뛸 예정이었지만 근육 상태가 좋지 않아 안 뛰도록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호날두는 7월27일 이탈리아로 귀국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러닝머신을 뛰는 모습과 함께 ‘Nice to back home’(집에 돌아와 기뻐)이라는 문구를 남겨 한국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게시글에 온갖 욕설과 험담이 댓글로 달리자 호날두는 그것을 지우다가 결국 글을 내렸다.

시간이 흘러도 논란은 줄지 않는다. 한국의 한 변호사가 7월29일 유벤투스 내한 경기를 총괄한 주최사 더페스타와 유벤투스, 호날두를 사기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발하면서 소송전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정치권에서도 호날두를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7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한민국 외교가 사면초가·고립무원의 경지에 이르렀다. 가만히 있던 러시아가 군용기로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했고, 그 사실을 뻔뻔하게 부정하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호날두까지 대한민국 국민을 능멸하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29일 “김정은과 호날두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을 호구로 알고 있다. 김정은 이름을 ‘김날두’로 바꿔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음… 지금까지 날두해놓고 자기들만 아닌 척하기 있나요… 너도, 나도, 야날두.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블라블라

허수아비 ‘국프’

Mnet 누리집 갈무리
결국은 방송사가 결정했다. 엠넷의 <프로듀스×101>은 시청자가 투표해 아이돌 그룹 멤버를 결정한다. 2016년 <프로듀스 101>로 시작해 여성 그룹 아이오아이, 2017년 남성 그룹 워너원, 2018년 <프로듀스48>을 통해 아이즈원까지 결성됐다. 사회자는 참가자들에게 “국민 프로듀서에게 인사”를 명령했고, 아이돌 지망생들은 ‘국민 프로듀서님’(국프님)을 외치며 한 표를 구했다. ‘국프’라고 불린 시청자들은 “당신의 소녀/소년에게 투표하세요”라는 문장에 자극받아 열심히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동료까지 끌어들여 투표했다. 누리집에서 로그인하면 1인당 11명까지 날마다 투표할 수 있다. 생방송 중에는 100원을 내는 문자 투표가 가능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상 ‘공정함’은 생명이지만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우선 카메라가 권력이다. 방송국의 ‘편집’에 따라 순위가 요동쳤다. 그나마 공정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투표’였다. 응원하는 이가 편집 분량이 적으면 팬들은 공정하지 않다고 불평한다. 이번에도 그런 팬들의 지적질로 비쳤다. 20명 멤버가 선정된 다음날 프로그램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숫자가 이상하다’고 공식 제기됐다.

1위에서 20위 순위들의 표 차이 중 가장 작은 표 차는 순서대로 7494표와 7495표다. 그런데 다른 순위의 표 차 역시 이 두 숫자의 배수를 더한 값으로 구성됐다. 1위과 2위, 3위과 4위, 6위과 7위, 7위과 8위, 10위와 11위의 득표 차가 2만9978차이다. 이는 ‘(7494×2)+(7495×2)’를 한 값이다. 이런 숫자 차이로 이루어졌으니 20위인 토니의 득표수에 18위 득표수를 더하면 10위 득표수, 17위 득표수를 더하면 9위 득표수, 16위 득표수를 더하면 8위 득표수가 나온다. 이제 중·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유명한 수학 법칙은 ‘토니의 법칙’이다. 엠넷은 원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고 순위는 조작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전 프로그램의 득표 수문제도 추가로 제기되고 있다. 8월1일 진상조사위는 제작진을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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