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공동행동’과 ‘난민과함께공동행동’이 7월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난민 신청자와 인도적 체류자의 건설업 취업 금지 조치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세르가 한국에서 1년 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동안 고국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사나에선 물과 전기를 구하기가 힘들다. 생필품을 구하는 비용이 극도로 비싸져 외부 도움 없이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내전 상황을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에선 체류 기간을 연장하는 게 어려웠지만 일자리를 구하고 돈을 버는 것은 한국보다 쉬웠다. 한국에선 일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저 일하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조국에 있는 가족에게 조금의 돈을 보내는 게 내가 바라는 전부인데, 그게 이렇게도 힘들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는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나 인도적 체류자와 체류 기간이 6개월을 넘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난민 신청자는 본래 직업과 상관없이 단순노무직으로만 일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명시한 단순노무직은 건설, 운송, 제조, 청소, 경비, 가사, 음식 판매, 농림, 어업 분야에 다 있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운 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건설, 제조, 농림, 어업 분야 정도에 있다. 이 중 가장 일자리가 많고 접근성이 높은 건설업에 취업할 수 없게 한 것은 예멘인과 난민의 삶에 심각한 위협을 준다. 법무부 방침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예멘인은 <한겨레21>이 파악한 수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른다. 건설 현장에서 일자리를 구했다가 쫓겨난 무함마드(20·가명)는 “우리 인도적 체류자들은 단순노무직에서만 일할 수 있는데, 건설업에 취업할 수 없게 한 것은 너무 가혹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건설업 분야 종사 이주노동자가 늘어나 내국인 일자리 잠식이 우려된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지난해 8월 내국인 취업자 수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쏟아지자 법무부는 한 달 뒤 건설업 불법취업자는 1회 적발시 바로 출국 조치하고, 불법취업 적발시 건설 현장 소장 등에게 관리 책임을 묻도록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불법 체류·취업 외국인 대책’을 발표했다. 이주노동자 증가는 건설 현장에선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대한건설협회가 한국이민학회에 의뢰해 작성한 ‘건설업 외국인력 실태 및 공급체계 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2018년 5월 기준 건설업 종사 이주노동자는 22만6391명으로 전체 건설업 노동자의 19.5%를 차지했다. 한국이민학회는 이들 중 15만9천여 명을 불법취업으로 파악했다. 불법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휴일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휴식 시간에도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단속에 걸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서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한국인보다 나이는 젊지만 임금은 적게 줄 수 있기 때문에 건설업 고용주들이 선호한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건설업 노동환경을 열악하게 만든다고 우려해왔고,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충돌하는 일도 잦았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 현장에서 공사 기간 단축과 비용 감소 압박이 들어오면 하청업체는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건설노조에 계신 분들만이라도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충돌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갈등의 불씨가 이주자 가운데서도 가장 힘이 없는 ‘난민’에게 떨어진 것이다.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아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난민에게 건설업에 취업할 수 없게 한 것은 가혹할 뿐만 아니라 내국인 일자리 보호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5명이 내국인 일자리 위협할까 “이번 법무부의 조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야세르와 같은 인도적 체류자들이다. 전쟁 지역에서 한국으로 피신 온 인도적 체류자는 2018년 말 기준 2005명이다. 이들을 건설업에서 배제해 내국인 일자리를 얼마나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난민인권네트워크의 이일 변호사가 난민 신청자와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건설업 취업 불가 방침의 철회를 주장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