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평준화조차 반대하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중도 위장한 보수?
“우리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 기업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시장이 개방되고,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덩치가 크다고 규제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삼성전자·포철도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마이크로소프트 등과 비교하면 중소기업에 불과한 실정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도 노골적 반대
전경련이나 재벌기업이 세운 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주장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말없는 다수를 대변하는 중도 시민단체’를 자임하며 지난 3월12일 창립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전하는 ‘현행 공정거래법에 대한 검토’ 의견이다. 이영조 사무총장(경희대 교수·정치학)은 “우리 사회는 지나친 평등주의와 집단주의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이 훼손되고 있다”며 “특정담론에 치우치지 않고 사회 중심에 있는 분들과 함께 중산층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시민단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회의가 지금껏 보여준 언행을 보면 그들이 과연 ‘중도’를 지향하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경영이 낳는 폐단을 막기 위해 마련된 출자총액제한 완화를 환영하는가 하면, 고교평준화 제도는 “능력에 따른 수업을 받을 권리를 차단한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보수적 색채가 너무 뚜렷하게 읽힌다. 지난 2000년 11월 창립해 대표적 극우보수단체로 자리잡은 자유시민연대가 “시민회의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시민회의가 창립식에 맞춰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www.cubs.or.kr)에 올려놓은 ‘시민회의의 생각’을 보면, 이들 단체간의 차이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해 시민회의는 “누구든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방의 의무 등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 부과된 책무를 거부해도 좋다면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단 말이냐”며 “남북이 대치하는 현실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싫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병역거부자의 인권이 4천만의 인권보다 중요한가”를 따져물은 자유시민연대의 주장과 정확히 닿아 있다. 지난달 8일 여야 국회의원 27명이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두 단체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자유시민연대는 “편집위원회의 구성이나 편집규약의 제정 공표 등에 왜 정부 권력이 간섭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고, 시민회의는 마치 화답하듯 “이는 정치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탄압, 조정하기 위한 의도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남현 자유시민연대 대변인은 “시민회의는 기본철학과 개별정책에서도 우리 단체와 차이가 없다”며 “보수를 표방했을 때 갖게 될 이미지를 의식해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원 규모만 1100명에 이른다는 이 단체에 대거 참여하는 ‘거물급’ 인사들의 면면도 이 단체의 실체에 대한 가늠자 구실을 한다. 남덕우(전 국무총리)·사공일(전 재무장관)·송정숙(전 보사부 장관)·조해녕(전 내무부 장관)씨 등이 고문으로 추대됐고, 이화여대 김석준 교수(행정학)와 연세대 송복 교수(사회학)를 비롯해 김진현 전 과기부 장관·석종현 한국공법학회 회장·이군현 한국교총 회장 등 9명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발기인 명단 가운데는 민병균 자유기업원장과 이도형 한국논단 대표, 연세대 유석춘 교수(사회학)와 군사평론가 지만원씨 등 ‘논객’도 눈에 띈다. 참여의사 번복하는 해프닝 애초 참여의사를 밝혔던 일부 인사들이 창립식에 앞서 ‘직접 참여하기는 곤란하다’며 발을 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친분 때문에 참여의사를 밝혔다가 이를 말리는 목소리가 커지자 끝내 고사한 분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준비단계에서 공동대표직을 맡기로 했다가 기존 참여단체의 반발을 샀던 한 원로급 인사는 실제 수락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입을 닫아버리기도 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시민권리국장은 “시민회의의 출현은 우리 시민사회의 자연스런 이념적 분화현상이 아니라 시민단체로 위장한 특정 이익집단의 조직적 움직임으로 보인다”며 “각종 개혁정책이 퇴색·후퇴하면서 비판적 시민단체에 대해 재벌 등 보수진영이 대항세력화를 꾀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지난 3월 12일 창립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실. '시민단체로 위장한 특정 이익집단의 조직적 움직임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있다. (김종수 기자)
하지만 시민회의가 지금껏 보여준 언행을 보면 그들이 과연 ‘중도’를 지향하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경영이 낳는 폐단을 막기 위해 마련된 출자총액제한 완화를 환영하는가 하면, 고교평준화 제도는 “능력에 따른 수업을 받을 권리를 차단한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보수적 색채가 너무 뚜렷하게 읽힌다. 지난 2000년 11월 창립해 대표적 극우보수단체로 자리잡은 자유시민연대가 “시민회의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시민회의가 창립식에 맞춰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www.cubs.or.kr)에 올려놓은 ‘시민회의의 생각’을 보면, 이들 단체간의 차이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해 시민회의는 “누구든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방의 의무 등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 부과된 책무를 거부해도 좋다면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단 말이냐”며 “남북이 대치하는 현실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싫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병역거부자의 인권이 4천만의 인권보다 중요한가”를 따져물은 자유시민연대의 주장과 정확히 닿아 있다. 지난달 8일 여야 국회의원 27명이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두 단체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자유시민연대는 “편집위원회의 구성이나 편집규약의 제정 공표 등에 왜 정부 권력이 간섭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고, 시민회의는 마치 화답하듯 “이는 정치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탄압, 조정하기 위한 의도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남현 자유시민연대 대변인은 “시민회의는 기본철학과 개별정책에서도 우리 단체와 차이가 없다”며 “보수를 표방했을 때 갖게 될 이미지를 의식해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원 규모만 1100명에 이른다는 이 단체에 대거 참여하는 ‘거물급’ 인사들의 면면도 이 단체의 실체에 대한 가늠자 구실을 한다. 남덕우(전 국무총리)·사공일(전 재무장관)·송정숙(전 보사부 장관)·조해녕(전 내무부 장관)씨 등이 고문으로 추대됐고, 이화여대 김석준 교수(행정학)와 연세대 송복 교수(사회학)를 비롯해 김진현 전 과기부 장관·석종현 한국공법학회 회장·이군현 한국교총 회장 등 9명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발기인 명단 가운데는 민병균 자유기업원장과 이도형 한국논단 대표, 연세대 유석춘 교수(사회학)와 군사평론가 지만원씨 등 ‘논객’도 눈에 띈다. 참여의사 번복하는 해프닝 애초 참여의사를 밝혔던 일부 인사들이 창립식에 앞서 ‘직접 참여하기는 곤란하다’며 발을 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친분 때문에 참여의사를 밝혔다가 이를 말리는 목소리가 커지자 끝내 고사한 분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준비단계에서 공동대표직을 맡기로 했다가 기존 참여단체의 반발을 샀던 한 원로급 인사는 실제 수락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입을 닫아버리기도 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시민권리국장은 “시민회의의 출현은 우리 시민사회의 자연스런 이념적 분화현상이 아니라 시민단체로 위장한 특정 이익집단의 조직적 움직임으로 보인다”며 “각종 개혁정책이 퇴색·후퇴하면서 비판적 시민단체에 대해 재벌 등 보수진영이 대항세력화를 꾀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