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지난 1월31일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각주를 다 읽어보면 태평양의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 각주는 태평양이 언급한 대목에 이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다른 연구자는 뇌물죄와 공갈죄가 서로 겹치는 범죄라고 주장하면서 피고인에게 뇌물죄와 공갈죄가 모두 유죄로 인정된 과거 뉴욕주 사건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는 또 공갈죄와 뇌물죄가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인용되는 사례들은 협박에 의한 공갈죄와 뇌물죄에 관한 것임을 강조했고, 우리(미 연방대법원)는 후자의 판례가 홉스법 제정 이후에 선고돼 의회가 근거로 삼았던 판례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한다. 우리는 제7항소법원의 ‘뇌물죄와 홉스법상 공갈죄는 서로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연방법원의 경향이다(인용 판결: 미국 대 칸 United State v. Kahn 항소법원 판결)’라는 판결에 동의한다.” 이 각주에서 에번스 사건 재판부의 결론은 ‘뇌물죄와 공갈죄는 서로 양립 가능하다’(밑줄 친 부분 참조)는 것이다. 특히 연방대법원이 이런 결론을 내리면서 인용한 항소법원의 칸 판결은 이런 견해를 더욱 분명하게 밝힌다. 칸 사건은 지역 케이블방송 사업자인 칸이 시장과 시의원 등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칸은 “공무원들의 공갈과 협박에 못 이겨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했지만, 항소법원은 “부패한 공직자의 강요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수사 당국에 가는 것이지 뇌물을 주는 게 아니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거의 모든 뇌물 사건은 공직자의 강요 행위가 포함돼 있다. (중략) 공무원의 협박이 매우 압도적이어서 뇌물 제공을 거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우리 법원은 불법적인 강요에 굴복한 피고인이 뇌물 제공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미 연방대법 취지는 “뇌물죄 공갈죄 양립 가능” 결국 에번스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이 명확하게 밝힌 견해는 ‘공무원의 강요에 따라 뇌물을 제공한 공여자에게도 뇌물공여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번스 판결은 이 부회장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판례다. 대법원에 따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태평양은 2월19일부터 4월12일까지 각각 네 차례씩 의견서를 주고받으며 에번스 판결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특검팀은 태평양이 에번스 판결의 취지를 왜곡했다고 반박했고, 태평양은 특검팀이 판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공격했다. 특검팀과 태평양의 ‘의견서 공방’은 4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국정 농단’ 사건 네 번째 평의에서도 심도 있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수수자와 뇌물공여자를 대향범(對向犯·상대편이 있어야 이뤄지는 범죄) 관계로 보고 함께 처벌하는 것은 우리 법원의 기본 태도다. 대표적인 대법원 판례는 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 사건(대법원 1997. 4.17. 선고 96도 3377)이다.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은 “회사에 가해질 수 있는 불이익을 우려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김 회장 등에게 뇌물공여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대통령의 직무와 뇌물 제공 간에 대가 관계가 인정된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뇌물공여자를 처벌하지 않은 판례도 있긴 하다. 공무원이 ‘직무집행의 의사 없이 또는 직무처리와 대가적 관계 없이 타인을 공갈하여 재물을 교부하게 한 경우에는 공갈죄만 성립한다’는 판결(대법원 1966. 4.6. 선고 66도12)이다. 직무관련성이나 대가 관계가 전혀 없이 오직 협박과 공갈에 못 이겨 뇌물을 건넸다면 공여자는 공갈죄의 피해자가 될 뿐 뇌물공여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판례를 이 부회장 사건에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삼성의 최순실씨에 대한 승마 지원은 박근혜 정부의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협조’라는 대가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 부회장의 1·2심과 신동빈 회장의 1·2심도 ‘대통령의 강요 내지 겁박이 있었다고 해도 피고인의 뇌물공여죄는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23일 최순실씨와 함께 뇌물 혐의 첫 공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왼쪽). 2018년 11월14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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