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클럽 버닝썬 입구.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6년, 필자가 서울 강남 클럽을 잠입 취재하던 때 정준영씨 불법 동영상 촬영 사건이 터졌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여자친구와 벌인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면서 동영상 유출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때 필자가 들은 클럽 관계자들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들만의 은어인 ‘곰’, 경찰이 이제는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성폭력, 마약 그리고 성매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움트기 시작한 3년 전 상황과 비교해 지금 클럽 ‘버닝썬’ ‘아레나’로 연결되는 양상은 한층 더 악화한 모습이다. 만약 지금 같은 여론이 3년 전 그때로 되돌아가 본격적인 진상 조사로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당시 본격화하려 했던 미성년 성매매의 검은 유혹이 적어도 확산되거나 일상화되는 위험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많은 가출청소년에게 ‘강남’은 동경과 선망,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기회의 플랫폼이다. 하지만 그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성착취와 쾌락 충족의 대상자로 전락시키는 이들의 포악함은 가출청소년들의 영혼을 극한의 황폐함으로 몰아가고 있다.
윤지 당시(17·가명)를 알게 된 건 2015년 여름이었다. 서울 신도림역 근처에 있는 가출청소년쉼터에서 만난 윤지는 가출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나름 잘 알려진 친구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 표현 그대로 ‘연식이 오래된’ 탓이다. 11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폭행에 못 이겨 집을 나온 윤지는 신도림과 영등포 일대를 떠돌며 쉼터와 ‘가출팸’(가출청소년들끼리 집단생활)을 오가며 생활했다.
걸그룹 꿈꾸던 ‘가출 6년차’
이런 상황만 보면 윤지가 삶에 아무 의욕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출 6년차가 된 윤지를 봤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윤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강하게 긍정했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믿음도 상당했다.
“어떻게든 뭉개고 버티다보면 나도 남들처럼 취직하고 공부도 하고 남친도 사귀고 코도 고치고, 대충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윤지는 누가 봐도 예쁜 외모였다. 적당히 타고난 끼도 있었다. 윤지는 여럿이 같이 지내는 쉼터의 비좁은 거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엠넷(Mnet) 음악방송만 나오면 아이돌의 칼군무나 걸그룹의 춤을 따라 추곤 했다. 제대로 강습받은 적은 없지만 윤지는 나름 프로 같은 재능을 보여주었다. 무슨 춤이냐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던 쉼터의 다른 친구들도 윤지의 실력을 한번 보고 나면 얘기가 달라졌다. 그래서일까. 윤지의 꿈은 걸그룹 가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그래서 구구단 외우기도 힘겨워 보이는 윤지의 꿈은 강한 의지만큼은 좋아 보였지만 조금은 위태로운 느낌이 스며들었다. 가출을 경험한 친구들끼리 나누는 정보란 대부분 음성적이거나 ‘무법지대’ 이야기다. 그 실행 과정에서 크고 작은 범법 행위가 속출했다. 윤지가 걸그룹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힌 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을 때, 난 앞서 말했던 위법적인 정보를 믿지 말고 검정고시 준비를 병행하면서 검증된 기획사를 찾아가 오디션을 받자고 제안했다. 윤지는 내 말을 자기 진로를 실현할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제법 대견하게 기다렸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검증된 기획사에서 오디션 받는 길을. 난 그런 윤지에게 검정고시 준비를 위한 책들을 사다 주었다. 그렇게 2015년 겨울이 지나갔다. 해가 바뀐 2016년 1월, 윤지가 사라졌다. 쉼터에서 같이 지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윤지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뿐이었다. 휴대전화를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기계음만 되돌아왔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초조해졌다. 가출청소년들이 쉼터에서 이른바 ‘잠수’(자취를 감추는 것) 타는 일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 이틀이면 돌아오는 게 그들만의 어떤 규칙이었다. 그런데 윤지의 자발적 실종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때부터 난 윤지에게 벌어질 법한 일이 낯선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두려움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윤지를 본격적으로 찾아나섰다. 쉼터 네트워크만으로는 윤지를 찾는 데 한계가 있어, 윤지가 쉼터에 오기 전 같이 생활하던 가출팸 아이들을 만났다. 그렇게 수소문한 지 이틀 만에 한 친구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윤지, 강남으로 떴어요.” “강남 어디?” “클럽이요. 클럽!” “클럽?” “거기 가서 연예인으로 데뷔도 하고 돈도 대박(많이) 만지고. ‘룸빵’(룸살롱)이나 ‘단란’(주점) 나가는 것보단 훨씬 ‘가오’(체면) 서니까 요즘 애들, 거기로 많이 스카우트돼서 들어가요.”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한 클럽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있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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