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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진급규정 제1조- 남자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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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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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승진차별… 채용과 사내훈련부터 높은 장벽 만들어

사진/ 남성 중심의 직장구조에서 호텔. 유통업계의 여성 승진 길은 멀기만 하다. (한겨레)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서울시내 한 특급호텔에 근무하는 김아무개(37)씨. 이 호텔에서 일한 지 올해로 14년째다. 직급은 식음료부문의 웨이트리스(5급). 고참 웨이트리스이긴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서러운 ‘만년’ 웨이트리스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붙은 고참이란 수식어를 굴레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학력, 업무 등에서 김씨와 같은 조건으로 출발했던 입사동기는 26명(남성 12명, 여성 14명)이었다. 그러나 5년 뒤, 남성과 여성이 걷는 길이 확연히 갈리기 시작했다. 승진할 때가 된 것이다. 남자 동료들은 93년부터 하나둘씩 캡틴(4급)으로 올라가기 시작해 98년까지 모두 다 진급했다. 일부는 매니저(3급)까지 올랐다.

여성 업종에서 더 심각


반면 여성 14명 중 4급으로 승진한 동료는 현재까지 7명에 불과하다. 물론 김씨를 비롯한 나머지 7명은 만년 웨이트리스로 남아 있다. 그나마 여성은 94년, 97년, 99년 각 1명씩, 그리고 2000년과 2001년에 각각 2명씩 승진했을 뿐이다. 맨 꼴찌가 된 남자 직원이 승진하고 난 뒤에야 호텔쪽이 여성을 진급시키기 시작한 것인데, 여성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를 달래기 위해 띄엄띄엄 한명씩 캡틴 자리로 올려앉혔다. “회사는 늘 ‘4급에서 자리(T/O)가 남아야 여성을 진급시켜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저는 번번이 탈락시키고 대신 남자 직원은 저보다 입사가 훨씬 늦었어도 때만 되면 다 승진시키는 게 말이 됩니까?” 김씨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이렇듯 김씨가 승진인사 때마다 번번이 쓴 맛을 봐온 데는 조직의 뿌리깊은 성차별적 승진 관행이 놓여 있다. 호텔쪽이 남녀를 따로 나눠 승진인사를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남자 직원을 더 높은 비율로 캡틴으로 진급시킨 것이다. “전에는 결혼, 출산으로 그만두는 여직원이 많았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밑에 있던 남자 직원이 치고올라가 승진하는데 자기는 계속 처지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견디지 못해 승진 때만 되면 그만두는 여성이 많이 생기죠.”

몇년째 승진 때마다 남자 직원에게 밀리면서 설움을 삼켜야 했던 김씨는 결국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성차별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호텔쪽은 △남성 중심의 지방호텔 근무자에 대한 배려 △육체적 피로가 큰 야간업장 및 연회부문에 상대적으로 남자 직원이 많은 점 △여직원은 상대적으로 쉬운 업무에 일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남자 직원이 여성에 비해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더 많이 승진시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성부는 조사결과 “남성 4급 승진자 중 지방호텔로 내려간 사람은 단 한명도 없고, 여성과 남성의 본질적인 업무에 차이가 없는데도 단지 야간업무에 남성 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로 여성 승진을 제한한 것은 성차별”이라고 결정했다.

호텔쪽도 그렇지만 승진에서 여성이 홀대를 당하는 건 ‘여성 업종’으로 불릴 만큼 여사원들이 많은 유통업계에서 더욱 심각하다. 전체 직원 숫자로는 여성이 직장을 주름잡지만 간부사원으로 들어가면 여성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 평사원 출신의 부장급 이상 여성 간부는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정규직원 중 남녀가 절반씩이고 대졸 출신 여사원이 100명을 넘지만 평사원 출신의 여성 최고위직은 과장(바이어) 2명뿐이다. 반면 과장급 이상 남자 간부는 470명이나 된다. ‘여성은 간부가 될 수 없다’는 남성 중심의 인사 관행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롯데백화점은 “매장은 체력적으로 고된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된 일을 하는 곳인데 여직원이 절반 이상이라는 점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여성노동자 80% 승진 비관

사진/ 국내 백화점에서 여성 임원은 아직 단 한명도 없다. 상품권을 판매중인 백화점 여직원들. (박승화 기자)
신세계백화점도 정규직 여사원 4천여명 가운데 평사원 출신 최고위직은 역시 과장(6명)이다. 여성 승진에 더 인색한 백화점들도 수두룩하다. 뉴코아백화점에서는 계장이, 갤러리아, 미도파 등에서는 대리가 여성으로서 최고위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점장이 나오는 것은 물론 간부로 승진하는 것조차 바늘구멍일 수밖에 없다. 현대백화점도 크게 나을 건 없다. 여직원 2천여명 중 평사원 출신 여성 최고위직은 차장(2명)에 그치고, 과장도 7명뿐이다. 이렇듯 열악하기 짝이 없는 여성 승진 관행을 딛고 외부 발탁이 아닌 승진을 통해 여성이 임원 자리에 오를 날은 아득하기만 하다.

이와 달리 외국계 유통업체는 여사원 출신 일부를 임원으로 발탁하고 있다. 한국까르푸는 점장급 이사 29명 중 여성이 2명이고 매니저(부·과장) 800명 중 150명이 여성이다. 지난해 4월에는 처음으로 여성 점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까르푸의 설명은 롯데백화점과 전혀 딴판이다. “고객이 주로 주부들이다보니 여성의 섬세한 면이 회사 영업에도 잘 맞고 그래서 여성의 승진도 빠르다”는 것이다. 월마트 역시 이사 20명 중 여성이 2명이고 부점장급 여성 1명이 배출되는 등 국내 업체에 비해 여성 승진이 나은 편이다.

여성이 승진에서 찬밥신세인 것은 노동연구원의 ‘2000년 한국노동패널조사’(조사대상 5천가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조사대상 가구에 속한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 1341명(남성 892명, 여성 449명)의 성별 직위분포를 보면 여성노동자 중 대리급 이상은 8%로 남성 대리급 이상(37.2%)의 약 5분의 1에 불과했다. 또 과장급 이상 여성은 19명(4.2%)에 불과한 반면 과장급 이상 남성은 177명(19.9%)에 달했다. ‘상위 직급이나 직위로 승진한 적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남성은 28.3%가 ‘그렇다’고 한 반면 여성은 ‘승진경험이 있다’는 답이 9.3%에 그쳤다. 윗자리가 아주 가깝게 보이지만 ‘남성 중심의 직장구조’라는 유리천장이 여성의 승진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승진차별은 미래의 승진 가능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현재 그 일자리에서 오래 근무하거나 업적이 좋으면 승진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여성의 19.4%가 ‘그렇다’고 답했다. 바꿔말하면 여성의 80%는 자신의 승진을 비관적으로 여기거나 아예 포기한 상태인 셈이다. 특히 가정이 있는 남성은 가계부양의 책임감 때문에 생산성이 높다는 이유로 승진확률이 높아졌지만 거꾸로 여성은 비록 배우자가 있더라도 이것이 승진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에 대한 승진차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원은 “학력, 근속기간, 정규직(비정규직) 등의 조건을 고려했을 때 ‘평균적으로’ 여성이 승진할 확률은 남성의 절반 정도”라며 “이른바 ‘승진이 가능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낮은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정규직일 때 승진을 경험할 확률은 여성 2.6%, 남성 2.5%로 성별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정규직은 여성 9.1%에 비해 남성은 22.1%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여성노동자 73%가 비정규직인 현실 즉, 여성의 27%만 승진가능 직종에 일하고 있기 때문에 성별 승진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진다고 할 수 있다. 특정한 직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승진기회가 거의 없는 직종에 여성이 집중된 데서도 원천적으로 승진차별이 비롯되는 것이다.

채용·승진·임금의 견고한 차별구조

사진/ 여성부는 남녀차별신고센터를 두고 각종 남녀 성차별 문제를 신고받아 처리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특히 여성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면서 승진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승진차별의 벽이 채용 때부터 이미 높게 존재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금 연구원은 “육아문제 해결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승진차별을 깨려면 채용 때부터 비정규직보다는 ‘승진가능 직종’에 여성이 침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승진차별은 사내훈련 차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기업들은 여성에게 훈련을 시켜봤자 출산, 결혼 등으로 곧 직장을 떠날 것이고 직무애착도도 낮기 때문에 훈련투자의 기대효과가 높지 않다고 여긴다. 여성에 대한 이런 훈련기피는 당연히 여성이 승진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평균적으로’ 여성은 으레 그럴 것”이라는 뿌리깊은 통념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이는 직장 귀속감이 낮지도, 직장을 곧 떠날 생각도 없는 수많은 여성 개개인에게는 명백한 차별이다. 이런 통념 속에서 여성들은 직장 남성들과 더욱 힘겨운 승진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승진차별은 임금격차로 이어진다. 노동부의 ‘매월노동통계조사보고서’를 보면 농업을 제외한 전 산업에서 남성임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여성임금은 90년 53.3, 2000년 63.2로 나타났다. 승진기회가 박탈되면 생애노동에서 임금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지게 된다. 채용, 승진, 임금이 한 고리로 얽혀 돌아가면서 여성차별이 구조적으로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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