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와 관련해 발의된 수정안이 모두 부결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강창광 <한겨레> 기자
민주노총이 처음부터 현 정부와 불화한 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7년 12월 압도적 표차(66% 대 27.3%)로 당선된 김명환 집행부는 ‘사회적 대화’를 내걸었다. 범개혁세력으로 분류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당시 민주노총 내부의 기대는 상당했다. 정권 초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계에 우호적 흐름이 있었다. 김명환 집행부는 취임 첫달인 지난해 1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해, 무려 19년 만에 사회적 대화에 복귀했다. 대의원들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었지만, 사회적 대화에 대한 민주노총 대의원들의 판단은 1년 사이 확연히 달라졌다. 최저임금 등 현안서 노동계 패싱 김명환 위원장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직후인 지난해 2월6일 열린 66차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은 민주노총의 사업 기조에서 ‘사회적 대화’를 빼자는 수정안에 31%만 찬성했다. 나머지 70%는 사회적 대화를 지지한 셈이다. 반면 지난 1월28일 67차 대의원대회에선 경사노위에 일단 참여 뒤 조건부 탈퇴를 하자는 ‘사실상 참여안’에 44%만 지지를 보냈다. 사회적 대화를 내건 김명환 위원장 당선에 크게 기여한, 민주노총 내 최대 의견그룹인 ‘민주노동자 전국회의’도 ‘사실상 참여안’에 표를 주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의 갈등은 지난해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계기였다. 이후 주 최대 52시간제 시행 유예와 이어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근 시작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까지, 정부가 “정책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조처”라 부르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노동계에서 보기엔 ‘개악’이었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추진 과정을 거치면서 경사노위에 우호적인 사람들마저 내부 설득 논리를 찾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경사노위는 정부가 이미 정한 정책 방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원형 기구’에 불과하단 것이다. 1월25일 문재인 대통령과 양대노총 위원장의 만남도 이런 불신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근 민주노총에 대한 힐난, 최저임금 등 현안에 노동계를 ‘패싱’한 부분도 적신호가 됐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정부와 경영계는 민주노총의 결단만 촉구할 게 아니라 그동안 노동을 존중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역사성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다시 무산되면서 사회적 대화는 위기를 맞았다. 한국노총도 마침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가 있던 1월28일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가운데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 당분간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각각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의제로 다루는 위원회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과에 대해 1월29일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란 초심에서 멀어진 정부의 노동정책과 경사노위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불신에서 비롯된 결과”라며 이전보다 강한 어조로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지난해 초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출범한 지 꼭 1년 만에 사회적 대화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당장 2월이 문제다.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같은 주요 쟁점의 국회 논의가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지난 1년6개월 조선·기계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총도 힘 있게 맞서 싸우지 않았다. 이런 중요한 변화가 가능한 건 사회적 대화 참여 의제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 그런 장치도 사라졌다. 당장 2월에 ‘힘 대 힘’으로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중재 실패한 정부·여당 문제는 정부·여당의 ‘태도 변화’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2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대통령 공약인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은 경영계의 요구에 발목 잡힌 형국이다.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같은 국제노동기준에 반하는 내용을 경영계가 노골적으로 요구하지만 정부·여당은 중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제는 앞으로도 갈등이 완화될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남북관계처럼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노사정 관계인데,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너무 소극적·미온적이었다. 컨트롤타워가 무너진 느낌”이라며 “남북관계처럼 특단의 반전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앞으로 노동계와 정부의 갈등은 빠르게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기용 <한겨레>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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