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선과 ‘정화의식’
등록 : 2002-03-12 00:00 수정 :
민주당 경선이 재미있습니다. 월드컵 맛빼기 구실은 톡톡히 할 것 같습니다.
50일에 걸친 레이스가 서울에서 끝나는 4월27일까지 주말 대회전의 결과는 주요 뉴스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경선이 치러지는 실내체육관의 분위기는 또 다릅니다.
3월9일 첫 테이프를 끊은 제주로 떠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고,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제주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실내에 앉아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 조금 보다가 시들하면 바닷바람이나 쐐야지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4시간여를 꼼짝 않고 있게 된 것입니다. 드라마였기 때문입니다.
경선은 일종의 ‘정화의식’입니다. 실내체육관이라는 공간적 요소에 환호, 감동이 어우러지면서 도가니가 되고 용광로가 됩니다. 선거인단도 후보자도 체육관을 들어설 때와 나설 때가 달라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살아 있는 정치가 느껴집니다.
선거인단석의 시민들은 후보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크로폴리스의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됩니다.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듣던 인물을 두 눈으로 검증함으로써, 후보와 선거인단 사이의 필터를 정화하는 것입니다.
선거인단석인 체육관의 관중석에서는 후보들이 내려다 보입니다. 높은 연단에 땅바닥인 유세장과 비교하면 의미있는 위상의 정화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유권자들은 그동안 당에서 낸 후보를 대상으로 사실상 찬반투표를 했습니다. 위에서부터 제한된 투표권 행사였습니다. 이에 비해 경선은 후보를 골라냅니다. 적극적 선택을 가능하도록 한 투표권의 정화입니다.
그래서 선거인단은 의식의 변화를 겪습니다. 표의 무게를 느끼고, 자유의지를 점검하게 됩니다. 책임의식이 ‘깨끗한 한표’로 정화되는 계기를 국민경선이 만들고 있습니다.
비록 한 정당의 후보 선출에 국한된 행사이지만, 이러한 정화의 기운이 대세를 이룬다면 정치에도 봄이 올 것입니다. 경선은 정화과정이고 정화를 막는 것은 경선의 적입니다. 지역주의, 조직, 돈, 비방을 넘어서야 합니다. 민주당의 실험이 선거제도의 새로운 버전으로 자리잡기 바랍니다. 그것은 후보자와 선거인단의 손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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