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청은 수 백명의 공무원을 동원해 1월8일 제2공항을 반대하는 도민들을 진압했다. 계단 위에 찢어진 채 놓인 팻말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그렇게 팔다리가 들려 누군가는 치마가 올라가고, 겹쳐 입은 옷 네 겹이 다 벗겨지고, 떨어져 머릴 다친 채로 내동댕이쳐졌다. 이른 아침에 시작한 행정대집행은 끝날 줄을 몰랐다. 사람들이 다시 그 계단으로 달려가고, 달려가고, 달려갔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제주 공권력은 시민의 도전을 거의 받지 않았다. 오늘 이 광경은 단일한 사건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참아온 분노가 축적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 밤, 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천막을 다시 세웠다. 작은 텐트가 몇 개 들어섰다. 계단에서 웅크린 밤샘이 다시 시작됐다. 비가 내렸다. 1인용 텐트 안에서 추운 것이 귀찮아 꾹 참아낸 아침이 밝았다. 천막이 또 늘었다. 그렇게 하루에 한두 개씩 날마다 늘어났고, 이제 날마다 입주자회의를 하는 마을이 되었다. 노루 가족이 지나는 길을 관통하는 도로 제주도청은 이미 행정대집행 전날 계단에 앉은 사람들을 고소했다. 계단에 앉은 사람들은 그 ‘법대로’라는 폭력 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 여기 이 사람들은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이들은 지금 일어나는 광경의 원인을 질문하고 있다. 행정대집행 바로 다음날, 제주도지사 원희룡은 보란 듯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계단에 앉은 이 사람들 한가운데를 관통해 들어갔다. 팻말을 밟아 빠개고, 먹던 음식도 밟고, 사람을 떼어내고, 광경을 동강 낸 원희룡 지사의 행동은 섬뜩할 만큼 상징적이었다. 원희룡 지사는 도청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도청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긴 도민들이 이용하는 도청입니다. 절대 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라고도 했다. 계단에 앉은 사람들은 절박하게 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도발하는 존재다. 감히 제주도청(관청) 현관 계단에 앉았으니 당연하게 ‘불온한 자들’이다. 제주도청에 천막을 세우기 전날, 비자림로 나무가 베어진 숲에 갔다. 2월에 공사를 다시 한다고 했다. 그 숲에서 아름답고 빨간 줄이 죽음을 암시하며 어떤 세계를 동강 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나무는 얼마 전에 죽었고, 어떤 나무는 곧 죽어야 하며, 어떤 나무는 친구의 죽음을 보며 살아남을 것이다. 비자림로 나무들 사이로 두 개의 펼침막이 나란히 있었다. 하나는 “도로 확장은 지역 발전. 사람이 먼저다”였고, 다른 펼침막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살려주세요.” 산록길로 오다가 노루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다. 차를 멈추고 라이트를 껐다. 노루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어린 노루 몇 마리가 안전하게 건너편 숲으로 들어갔다. 노루가 무사히 길을 건넌 뒤에야 알았다. 노루가 길을 가로질러 갔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산을 가로질러 도로를 냈다는 것을. 가느다란 빨간 선을 허리에 감은 나무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의 처지가 이 나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무는 인간의 욕망으로 한날한시에 이곳에 왔다가, 다시 인간의 욕망으로 한날한시에 죽었다. 그렇게 사라진 생명은 셀 수도, 헤아릴 수조차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에게 기회는 없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권력이 편안하게 지도에 그림을 그릴 때, 우리 삶은 통째로 요동쳤고, 우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무시됐다. 우리는 작전 대상이었지 논의할 주체가 아니었다. 개발로 얻어지는 재벌 이익보다 열등한 존재였고, 희생 시스템에 결국 굴복하고 말 하찮은 존재였다. 이곳에서 ‘당사자’란 ‘폭도’들의 이름 이곳에서 ‘당사자’란 말은 역사성을 박탈당하고 권력에 의해 절대적 타자로 전락했던, 그리하여 진압당해 마땅한 바로 그 ‘폭도’들의 이름이다. 우리는 저마다 생생한 얼굴로 자신의 분노를 말하고 자유롭게 싸우고 있다. 공권력은 물론 다수의 시민에게도 동의받지 못한 관청 점거는,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저 계단에서 제주의 새로운 정치 언어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분노한 얼굴들로 빼앗긴 것을 찾겠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실험실, 아시아의 군사 요충지, 소모형 관광지, 토호 정치의 텃밭으로 전락한 제주도 주민으로 이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살의 당사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천막촌 너머 밤은 더욱 춥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제주=글·사진 엄문희 제주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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