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공연하는 교장 선생님
등록 : 2002-03-06 00:00 수정 :
나이 지긋한 신사가 주머니를 하나 꺼내 들고선 안을 뒤집어 보였다.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시키려는 동작이었다. 곧이어 콧기름을 바르고 알 듯 모를 듯한 주문을 외웠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팔을 천천히 휘저으며 공중에서 기를 끌어모은 뒤 얍! 기합소리와 함께 주머니에 손을 넣자 갖가지 것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왔다. 꽃, 새, 과자…. 아이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지더니 이내 해맑은 웃음으로 바뀌었다. 강당에는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술 공연을 펼친 신사의 얼굴에도 덩달아 흡족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충북 청원군 내곡초등학교. 3월4일 열린 이 학교 입학식에선
오하영(60) 교장이 평소 익힌 마술을 선보여 신입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학교에 처음 들어오는 아이들 중에는 정서적으나 사회적으로 발달이 덜 돼 학교를 무서워하고 등교 거부증을 보이는 수가 있거든요. 학교가 재미있는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마술 공연을 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는 오 교장의 목소리가 더없이 정겨웠다. 이날 선보인 공연은 주머니 마술만이 아니었다. 동전 감추기, 수건으로 꽃 만들기, 찢어진 신문 붙이기, 부채 마술 등 10여 가지에 이르렀다. 스펀지 공이 2개로 됐다가 다시 3개로 분리되는 요술공 마술도 어린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가 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3년 전 교감으로 재직할 때였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흥미를 끌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마술만한 게 없다는 걸 우연히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다. “본격적으로 마술 공부를 해보겠다고 맘먹은 뒤에 마술책 3권을 사서 틈틈이 연습을 했습니다. 마술 장비도 한 20만원어치 구입했고요, 허허.” 이렇게 익힌 마술은 학생들에게 수시로 선을 보였다. 때로는 교장실에서, 때로는 아이들이 급식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에….
오 교장의 기행(?)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가을 학교 정원에서 수확한 봉숭아 꽃잎으로 신입생 전원의 손톱에 꽃물을 들여주고 학부모들에게도 봉숭아 꽃잎을 선물했다. 그러고도 아직 교장실 냉장고에는 1만명분의 봉숭아 꽃물이 가득 들어 있다고. 이는 오는 6월 월드컵 때 ‘붉은 악마단’과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 쓸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 고유의 정서가 깃들인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입학식 직후 그와 가진 전화 인터뷰 내내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교장실에 적지 않은 아이들이 놀러온 모양이었다. “우리 교장 선생님은요, 아이들을 잘 대해주시고요, 마술도 자주…. 또 성격도 좋으시고….” 수화기를 넘겨받은 4학년 김지연 어린이의 교장 선생님 자랑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