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월20일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 방문을 마친 뒤 서울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1월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 특별감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금융 당국 “상장 전 심사와 감리는 달라” 하지만 금융 당국이 ‘2016년 11월 삼성바이오의 코스피 상장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뀐 뒤 분식회계로 판단을 바꿨다’는 삼성 쪽의 주장은 곱씹어볼 만하다. 박근혜 정권의 금융 당국이 당시 시장에서 제기된 삼성바이오 관련 의혹을 뭉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가 삼성바이오 상장 직후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도 금융 당국은 ‘문제없다’고 회신했다. 금융 당국은 삼성바이오의 주장에 대해 “상장 전 심사와 감리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라고 반박한다. 상장 심사는 한국거래소가 주관하는 서면 심사로, 한국거래소가 상장이 예정된 기업 목록을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보내면 그중 60%를 무작위로 뽑아 해당 기업이 제출한 서면으로 심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금융감독원 감리는 각종 서류 조사는 물론 감사인(회계법인 담당자)을 대질신문까지 하는 강제력 있는 조사다. 그러나 삼성바이오 상장 당시 제기된 분식회계 의혹이 회사 쪽이 제출한 금감원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라는 점에서 금융 당국의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전문가들이 공시된 서류만 보고 짚어낸 문제점을 회계 감리를 전문으로 하는 금융감독기관이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의 상장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특혜였기 때문에 특별감리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상장 직전까지 삼성바이오는 3년 연속 적자로 주식시장 상장 요건을 채우지 못했지만 공교롭게도 금융 당국이 그 무렵 상장 조건을 완화해 코스피에 데뷔할 수 있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주식시장 상장 요건은 매출액이 1천억원이 넘거나 1년 동안 3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야 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삼성바이오가 상장을 추진하자 상장 요건을 크게 낮춰 적자 기업도 상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삼성바이오는 ‘적자 기업 최초의 코스피 상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바이오 사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둔 이 부회장에게는 또 하나의 악재가 터진 셈이다. 대법원은 법률을 제대로 적용했는지를 심리하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최종 확정되더라도 이 부회장의 상고심에서 새롭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앞서 하급심(1심과 2심)에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는 재판의 쟁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소 유지를 위한 증거로 추가되지 못한다. 그러나 재판하는 대법관들의 심증 형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박영수 특검팀)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입증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내기로 했다. 대법원이 법률심이긴 하지만 원심의 사실관계 판단에서 중대한 오류가 발견되면 파기환송 사유가 되기도 한다. 특검팀 관계자는 “특검 수사 때는 삼성바이오의 내부 문건 같은 증거를 입수하지 못해 하급심에서 분식회계 관련 내용을 다투지 못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판단이 나온 만큼 의견서를 제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삼바→제일모직→삼성물산, 승계의 밑돌 삼성바이오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주춧돌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주요 근거가 됐다. 삼성바이오의 미래가치가 높이 평가돼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갔다. 그 결과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 합병 때 실제보다 과대평가됐다. 이로 인해 삼성그룹 지주사 구실을 하는 삼성물산 지분이 전혀 없었던 이 부회장은 단숨에 17.23%를 보유한 통합삼성물산의 단일 최대주주가 됐다. 삼성은 그동안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에 ‘올인’하는 과정에서 기업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했던 이 부회장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1인자가 됐다. 그는 1996년 아버지 이건희 회장한테서 증여받은 61억원을 20여 년 만에 6조원으로 만들었다. 그가 삼성그룹 지분을 늘린 과정은 모두 편법과 불법 시비를 낳았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신뢰도 더불어 추락했다. 삼성의 신뢰 하락을 부추긴 조력자들도 있다. 삼성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논란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삼성을 옹호하고 나서는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이다. 삼성바이오 사태에서 이들의 활약은 어느 때보다 눈부셨다. 이들의 입을 통해 온갖 음모론과 억지 주장이 재생산됐다. 대표적인 게 ‘나스닥 상장론’이다. 삼성바이오가 미국 장외 주식시장인 나스닥에 상장했다면 이런 ‘봉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1월27일 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이렇게 주장했다. 앞서 삼성바이오는 증선위 결정을 반박하면서 “나스닥 상장을 우선적으로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나스닥에선 문제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삼성바이오가 만약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다면 코스피 상장 때처럼 대박을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미국 회계기준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 합작사인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을 부채로 회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바이오에피스는 자본잠식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이오에피스 대주주인 삼성바이오의 가치도 크게 떨어져 공모가가 코스피 상장 때보다 훨씬 낮아질 수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코스피 상장 때도 삼성바이오의 공모가가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만약 나스닥에 상장했다면 삼성바이오 고평가 시비가 끊이지 않아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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