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린 지난 11월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눈이 쌓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 김창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장,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이 지난 8월10일 서울 중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구체적인 사업 계획으로는 국내외 중요 기록물의 체계적인 발굴과 주요 기록의 데이터베이스(DB)화, 보존 가치가 있는 위안부 기록물 ‘국가기록물’ 지정 추진, 위안부 관련 기록물 보존 방안 강구, 역사 자료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탑재, 역사교육 추진 기반 마련, (위안부 피해자) 구술 기록집 외국어로 번역·발간 등 총 여섯 개를 꼽았다. 여가부는 계획 실행을 위해 기존 위안부피해자법에 따라 기념사업 등에 쓰이는 예산 등 9억3천만원을 모아 연구소 기금으로 마련했다. 이렇게 설립된 연구소는 내년 3월까지 9억원 넘는 예산을 집행해야 하지만 개소 4개월이 되도록 제대로 된 사업 실행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한겨레21>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연구소장,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과 갈등설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위안부 문제 관련 웹매거진 발행을 위한 계약을 조달청에 요청했다. 위안부 피해자 공문서 외국어 번역도 조금 진행됐지만 본 업무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고, 전체적으로 많이 늦어졌다”고 했다. 이뿐 아니라 여가부가 출범 당시에 제시한 여섯 사업 중 하나도 제대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연구소 업무 진행이 늦어진 이유로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을 꼽았다. “위안부 연구 관련해서 기존에 여가부가 발표한 내용을 실행하려고 해도 진흥원장이 사업 추진 이유를 반문했다. 거의 국정감사 질의응답을 준비하는 수준이었다. 공문서 번역과 웹매거진을 왜 하는지 설득하는 데만 한 달이 꼬박 걸렸다.” 연구소가 추진하려는 사업에 진흥원장이 간섭하면서 사업의 진행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변 원장은 “진흥원의 수장으로서 보고받아야 할 내용을 챙겼을 뿐 사업 추진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변 원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연구소는 진흥원이 공모해서 받은 용역 사업이기 때문에 진흥원장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보고 자료를 요구하면 연구소에서 보고 기간이 지체되면서 업무가 지연됐다”고 말했다. 김 소장과 변 원장은 팀장급 직원 인사를 놓고도 갈등을 겪었다. 변 원장은 기존 진흥원 직원 중 일본에서 위안부 연구를 했던 정아무개씨를 연구소 팀장으로 보냈지만 김 소장은 정 팀장을 업무에서 배제했다. 정 팀장은 “(연구소가) 위탁 사업이어서 진흥원이 책임질 수밖에 없고, 나중에 결재를 위해서는 본부장이나 원장이 알아야 했다. 그런데도 연구소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변 원장에게 보고하면 김 소장은 ‘왜 외부에 이야기하냐’며 몰아세웠다”고 했다. <한겨레21>의 취재 내용을 종합해보면 김 소장이 사퇴한 주요 원인은 연구소가 독립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없는 구조에서 느낀 좌절감 때문으로 보인다. 진흥원 용역 사업 대 독립 연구소 위안부 문제 연구를 해온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김 소장이 처음에 연구소장 자리를 고사하려 했는데 주변에서 가셔야 한다고 설득했고 삼고초려를 해서 모셨다. 당시 여가부 (정현백) 장관이 자율성을 보장하고 절대적으로 밀어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마음을 바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형식적으로는 여가부 산하기관의 부서로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독립을 보장하겠다’던 정 전 장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는 얘기다. 김 소장은 여가부 용역 보고서에서 연구소 설립을 위한 법 제정을 토대로 ‘독립성’과 ‘지속성’을 강조했다. 그만큼 김 소장은 독립된 위안부 문제 연구기관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러나 한국에서 독립적이고 큰 규모의 위안부 연구소를 바로 세우기에는 토대가 미약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한 뒤로 한국 사회 내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화제로 떠올랐지만, 학문적인 연구는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 연구를 지원한 적 없었고, 연구를 수행할 연구자는 부족했다. 이런 현실적 제약을 고려해 김 소장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부의 팀이긴 하지만 향후 독립적인 연구소 설립의 마중물을 마련한다는 계획으로 비상근 소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업무를 시작하고 김 소장은 한 달이 되지 않아 한계를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아무런 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진흥원 본부장과 원장의 결재를 받지 않고서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주변 지인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김 소장은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11월16일 진선미 여가부 장관을 만났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했고,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 <한겨레21>은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 위해 김 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변 원장은 “연구소는 젠더 관점에서 보는 위안부 문제 논의에 의욕을 갖고 진흥원이 뛰어든 용역 프로젝트다. 이름은 연구소지만 독립된 연구소는 아닌 것이다. 김창록 소장은 간섭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길 원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일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위안부 연구소와 관련된 일이 이렇게 된 부분에 대해선 안타깝고 스스로 반성도 하고 있다”고 했다. 문 정부의 위안부 문제 어디로…
지난 8월14일 오후 충남 천안 국립망향의 동산 안 모란묘역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첫 기념식에서 김경애 할머니가 문재인 대통령의 볼을 만지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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