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ㅁ영화 <노웨어 맨>의 장면들. 아미르가 공장에서 기도하고 있다. 김정근 감독 제공
<한겨레21>과 인터뷰 중인 김정근 감독. 박승화 기자
발루치스탄은 파키스탄 4개 주 가운데 석유와 천연가스, 각종 광물과 해양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지만 발루치 사람들은 이 자원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마실 물조차 부족한 사람들이 즐비하다. 파키스탄 정부가 모든 자원을 통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발루치 사람들을 탄압하기 때문이다. 10월20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난민환영문화제’에서 <한겨레21>과 만난 발루치 난민 나세르가 상황을 전했다. “파키스탄이 발루치스탄을 점령한 뒤 발루치 사람들의 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됐다. 파키스탄 군정보국기관(ISI)은 아이와 여성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납치하고 죽였다. 파키스탄의 착취와 폭력에 대항해 독립운동이 일어났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무력으로 짓밟았다.” 발루치스탄에서 2011년부터 2016년 말까지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죽임을 당한 뒤 버려진 주검이 1천 구가 넘는다. 발루치스탄의 인권단체 ‘실종 발루치인의 목소리’(VBMP)는 직접 조사한 죽음만 1200건에 이르고 파악하지 못한 죽음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아미르는 2006년 한국에 오기 전 발루치스탄에서 학생운동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주로 발루치의 독립을 외치는 시위와 발루치의 인권을 토론하는 회의에 참여했다. 그는 한국에 온 뒤에도 발루치의 독립을 주장하는 글을 써서 공유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다 파키스탄 정부의 눈 밖에 났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2009년 난민 신청을 하기로 결심했다.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발루치 독립운동가의 처지를 조금은 더 이해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아미르의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난민 신청한 지 2년 뒤에 ‘불인정’ 결정이 떨어져 행정소송을 했고, 아미르가 이겼지만 이번엔 법무부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를 제기해 고등법원으로 넘어가는 사이 발루치스탄에 있던 아들이 ISI에 납치당했다. 그는 2014년에야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발루치스탄에 있던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ISI에 납치됐던 아들도 풀려나 현재는 아미르 곁에 있다. 아미르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정말 너무 오래 걸렸다. 한국의 법무부와 정부에 왜 이렇게 오래 걸려야 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흐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아미르는 난민으로 인정받아 가족과 함께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힘든 일상을 버티고 있다. “한국은 물가가 너무 비싸다. 공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세, 전기세, 식비를 내면 거의 남는 게 없다. 아들이 대학에 가고 싶어 했지만 엄두도 못 냈다.” 아미르가 일하는 부산의 사상공단은 근무 환경이 열악한 곳이다. 한국인이 꺼리는 일자리를 아미르 같은 난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김 감독과 아미르가 사상공단에서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게 <노웨어 맨>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발루치 인권 상황 알리고 싶어 김 감독은 2016년 부산 영도조선소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으로 주목받았다. 희망버스를 다룬 2012년 상영작 <버스를 타라>부터 2017년 <노웨어 맨>까지 주로 사회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현재 김 감독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으로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의 삶을 필름에 담고 있고, 부산 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김 감독은 “아미르가 과거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처럼 조국을 떠나 임시정부의 인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 지배를 당한 아픔이 있는 한국이 품격을 갖춘 나라라면 아미르 같은 독립운동가에게는 조금 다른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미르는 파키스탄 군당국에 짓밟히고 있는 발루치의 인권 상황을 <한겨레21>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리는 발루치의 독립을 원한다. 한국과 유럽, 국제사회가 발루치스탄의 인권침해 상황에 관심을 갖고, 집단 학살을 멈출 것을 촉구해달라.”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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