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보’를 선택한 이유
등록 : 2002-03-06 00:00 수정 :
2002년 2월28일치 <한겨레>에는 ‘낯선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18면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 “‘아름다운 바보’ 그를 믿습니다”라는 제목의 의견 광고가 그것이다. 3당 합당을 거부하고, 4·13 총선때 낙선을 예감하면서도 부산에 출마한 “아름다운 바보”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특정 후보에 대해 지지 의견을 밝히는 것을 꺼리는 풍토 속에서 “광주에 사는 쉰아홉살 먹은 평범한 시민”이라고 밝힌
김수복씨의 광고는 일종의 ‘도발’이었다.
“이대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이었습니다. 대세론을 앞세운 두 사람의 각축 속에서 역사가 다시 20년, 아니 30년 전으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영어, 스페인어 등 5개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30년째 번역일을 해온 김수복씨. <해방의 실천과 전략>, <공동체 윤리> 등 주로 남미의 해방신학을 소개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하루 8시간 이상 꼬박 책상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지만 가톨릭 노동사목 광주분회 이사를 10년 이상 맡는 등 사회를 향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고민 끝에 <한겨레> 의견광고를 떠올렸다. 김씨는 “신문 독자투고도 생각해 봤지만, 객관성을 띠어야 하는 글의 성격상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적절치 않았다”고 광고를 낸 이유를 밝힌다.
역시 걸림돌은 1천만원이 넘는 광고 비용이었다. 며칠을 망설인 끝에 스스로 ‘아름다운 바보’가 되기로 했다. 30년 동안 부인 몰래 모아둔 쌈짓돈을 털었다. 그리고 짧지 않은 호소문을 써내려갔다. 광고가 실리던 날 새벽, 서둘러 일어나 배달된 신문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얼른 광고를 오려냈다. 김씨는 “빨리 광고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집사람이 혹시 볼까봐 그랬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아직도 부인에게 광고를 낸 사실을 고백하지 못했단다.
광고가 나간 뒤 전국에서 이메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김씨는 “특히 경상도에서 보내온 이메일이 많았다”며 “광고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분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김씨의 ‘특정 후보 밀어주기’는 광고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미 주위 사람 20여명을 설득해 민주당 국민경선 투표인단으로 등록해 놓은 터. 그는 “의견광고가 릴레이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슬쩍 내비친다.그의 바람대로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질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