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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전문가의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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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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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 소설가
시민들이 경찰에게 얻어맞으며 시민들이 부시의 전쟁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는 동안 미국의 전쟁을 미화하는 <블랙 호크 다운>은 영화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스크린을 채우고 있었다.

지난 한달 동안 우리 사회는 두 가지의 중요한 역사적 경험을 했다. 하나는 우리도 미국의 대통령을 냉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차도 멈춰 설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악의 축’이란 발언으로 한반도를 전쟁상황으로 몰아가려 했던 부시는 성남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규탄시위대의 ‘뜨거운’ 영접을 받았다. 한총련이라면 고개를 흔들던 사람들마저도 이번에는 달랐다. 한동안 현실문제에서 물러서 있던 문인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고,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현기영 이사장은 규탄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시민단체의 규탄집회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참가자들을 연행하려던 경찰을 향해 시민들은 거칠게 항의했다.

우리도 ‘반대’할 수 있다니


어쩌면 당연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10년 전에 얼마나 있었을까. 부시 정권의 일방적이고도 위험한 한반도 정책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힘이었다.

우리 국민의 성숙함을 확인시켜준 또다른 사건이 공공노조들의 파업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터무니없지만 완강한 미신을 깨고 철도와 발전, 가스부문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였다. 용납되지 말아야 할 것은 파업이 아니라 파업이 아닌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게 만든 정부와 공기업들의 무책임과 안이함에 있음을 노동자들은 증명해 보였다. 물론 시민들은 당장 불편하였고, 짜증이 났지만 과거와는 많이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비우호적인 언론에 등을 떠밀려 ‘강요당한 협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모욕하는 강제진압의 풍경을 피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시민들이 보여준 성숙한 태도의 덕분이었다.

부시의 발언과 공공노조의 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우리 사회에 대한 커다란 희망이었다. 하지만 긍지마저 느끼게 해준 시민의식의 성숙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전문가’들의 태도는 여전히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언론과 경제분야의 전문가들은 거의 한결같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파업은 안 된다’는 케케묵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했다. 1년에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24시간 맞교대 노동을 강요받으며 일하다가 해마다 30명의 노동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철도노동자들은 언제까지 계속해서 ‘시민의 발을 묶지 않기 위해’ 죽어나가야 하는지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민영화를 통해서 시장기능에 맡기는 것만이 철도의 지상과제라고 주장하는 그 입으로 철도는 파업을 해서도 안 될 만큼 중대한 ‘공공’의 성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분야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주장이 지닌 모순에 대해 얼굴을 붉히지도 않을 만큼 후안무치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전문가들은 기간산업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산업’ 영역에서도 넘쳐난다.

종묘공원에서 머리가 터지도록 경찰에게 얻어맞으며 시민들이 부시의 전쟁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는 동안 미국의 전쟁을 미화하는 <블랙 호크 다운>은 영화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서울 시내의 스크린을 채우고 있었다.

위험한 찬사

1천명이 넘는 소말리아 시민과 민병대원을 학살한 작전 중에 미군 전술헬기 블랙 호크가 추락해서 17명이 죽은 이야기가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학살행위를 미화한 ‘서부영화’와 ‘베트남전’ 영화들보다 <블랙 호크 다운>이 더 나쁜 것은 지나간 과오에 대한 미화에 그치지 않고 소말리아에 대한 재공격의 사전 정지작업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소말리아 사람들은 미국의 폭격이 날아들까 두려움에 떨며 별의 숫자도 맞지 않는 성조기를 그려서 자기 집의 지붕에 걸어두고 있다. 미국에 있는 소말리아 난민단체들이 <블랙 호크 다운>이 상영되는 극장 앞에서 상영반대 시위를 벌인 것은 그 영화가 소말리아인의 목숨과 결부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영화 전문가들은 리들리 스콧이란 감독 이름과 할리우드의 엄청난 물량 앞에 압도당해서 <블랙 호크 다운>을 극찬하며 극장으로 손님들을 불러모았다. 광주 민중들의 항쟁을 진압하다가 고립되어 죽음을 맞이한 공수부대원 몇명의 처절한 전우애와 장렬한 최후를 그리면서 광주 민중들을 불나방처럼 그린 영화를 만들어 놓아도 ‘비주얼’만 좋으면 최상의 찬사를 바쳐야 하는 걸까. ‘눈이 부시고 몸은 얼어붙고, 그래서 황홀한 전율!’이라고 극찬해야 할까.

방현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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