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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열독율 1위, ‘가족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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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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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일상의 기록, 가족신문을 만드는 가정엔 대화와 행복이 있다

(가족신문은 멀리 떨어진 친인척을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매월 100부씩 <종이비행기>를 펴내는 윤호네 가족)
어느 여름날 오후 잡지책을 보던 승환이가 마루로 튀어나와 숨막히게 엄마를 불러댄다. 죽지 않는 비결을 발견해냈단다. “하루에 메치니코프 8병을 마시면 절대 안 죽는다!” 엄마는 자다가 웬 봉창 두드리냐는 표정. 이어지는 승환이의 말. “메치니코프 박사가 생명 연장의 꿈을 발견했다잖아. 우리 몸 속의 병균을 몽땅 잡아 죽이려면 유산균을 많이 많이 마시면 되는 거야.” 광고에 나온 문구를 호들갑스레 옮겨대는 승환이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배꼽을 잡는다.

방학맞아 신문제작 붐

경북 김천에 사는 민지와 승환이 남매네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이야기는 이들의 가족신문 <민지와 승환이네>의 ‘두런두런’ 코너에 그대로 올라 있다. 몸피가 작고 통통 튀어서 콩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승환이는 횡설수설할 때가 많다. 5살 때부터 유명했던 그의 횡설수설은 ‘승환이의 횡설수설 일기’에 8해째 꼬박꼬박 올라 있다. 학원에서 졸았던 이야기, 노총각 외삼촌이 장가간 이야기,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게임 이야기, 동네 친구 이야기 등 승환이가 일상에서 겪은 일들이 투박한 표현으로 가감없이 전달된다.


<민지와 승환이네>는 가족신문을 만드는 이들에게는 ‘열독률’이 높은 매체다. 93년 5월에 창간한 이래 매달 1일, 2일이면 어김없이 발간되는 종이신문에 이어 창간 100회 기념으로 97년 7월1일 인터넷 홈페이지(http://myhome.shinbiro.com/@minjine)를 만들어 온라인 서비스도 한다. 종이신문 형태로 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이메일로 보내준다. 그대로 다운받아 출력하면 종이신문이 된다. 지난 8월7일에는 인터넷에 집을 꾸민 지 3년 만에 조회수 10만을 넘어섰다.

이 신문은 민지 아빠 이문실(46·김천세무서 근무)씨가 결혼기념일에 부인에게 선물로 한번 만들어준 게 계기가 됐다. 민지 엄마 김연순(43)씨는 “애들 아빠가 선물 안 해놓고 미안하니까 애들하고 죽이 맞아 신문을 하나 만들어주데요. 재미있어서 주변 친지들에게 돌렸더니 다들 신기해했어요. 그래서 다시 해봤는데 그게 어느덧 우리 가족의 중요한 일과가 됐죠. 아이들하고 머리 맞대고 만드는 것도 즐겁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것도 보람있어요”라고 자랑한다. 민지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레이아웃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A4용지 두장에 엄마, 아빠, 딸, 아들이 골고루 나눠 맡은 꼭지들도 그대로다. 현재 100부가량 프린터로 뽑아서 이웃 독자들에게는 그냥 나눠주고, 멀리 사는 친척과 친지들에게는 우편으로도 보내준다.

가족신문은 형태가 다양하다. 주간, 격주간, 월간, 계간까지.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제작방법도 손쉬워졌다. 민지 엄마의 추정으로는 종이신문 형태로 만드는 가족은 전국 100집쯤 되고, 인터넷 가족신문을 만드는 가족은 수백집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기념일이나 생일, 환갑잔치를 계기로 한두 차례 만들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겸해 가족소식을 알리는 집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방학숙제로 가족신문을 만들 것을 권장해 아이를 둔 가정에서는 가족신문 만드는 붐이 일기도 해다. 민지네의 경우 초등학교 개학을 이틀 앞둔 날 전국의 가족들로부터 하루 동안 문의 이메일이 1천통 넘게 쏟아져들어왔다고 한다.

가족간 논쟁의 장이 되기도

(사진/가족커뮤니티사이트의 도움으로 가족신문을 만들게 됐다며 기뻐하는 성준이네 가족.아빠는 여행기,성준이는 게임이야기,엄마는 식생활 정보를 쓰겠다는 포부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성준이네는 방학 숙제를 위해 가족신문 제작에 뛰어든 경우이다. 성준 아빠 박해룡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성준이의 숙제를 도와주다가 가족신문 애찬론자가 되어버렸다. 아예 본인이 발행인이 되어 <성준신문> 2호를 준비하는 중이다.

“8월27일에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툴을 이용해 부랴부랴 시험적으로 만들어 올렸어요. 그런데 깜짝 놀랐어요. 잠깐 출력해서 교정보는 사이에 30여명이 다녀간 거예요. 한분은 사이트 웹마스터보다 먼저 방문해서 <성준신문>에 짧게 쓴 예절교육 캠프에 대해 문의하셨어요. 그분께 제가 아는 다른 정보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드렸죠. 야 이렇게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구나 실감했어요.”

박씨는 가족신문을 만드는 일도 좋지만, 그걸 매개로 다른 가족들과 정보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어 더 반갑다고 한다. <성준신문>은 가족커뮤니티사이트 해피네(www.happyne.com)에서 제공하는 툴을 이용하는데, 앞으로 아빠는 여행기를 연재하고 성준이는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를 하고 엄마 장은주(40)씨는 <성준신문>에 일간지 광고면 형태로 글을 올려 참신하게 지면을 꾸며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엄마와 성준이는 한달에 한번 정도만 내자고 하는데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씩 내자고 해 의견조율중이라고 한다.

(사진/성준이의 방학숙제를 계기로 만들기 시작한 <성준신문> )
대가족일 경우 신문 하나가 멀리 떨어진 가족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과천에 사는 윤호네 가족이 한달에 한번 펴내는 <종이비행기>가 대표적이다. 98년 6월15일 첫선을 보인 <종이비행기>는 100부씩 찍는다. 4남매인 엄마쪽보다는 와글와글 잘 모이는 아빠쪽 8남매 가족이 주요 등장인물이자 애독자들이다. 논쟁, 칼럼, 인터뷰, 현장스케치, 알림란, 독자편지 등 다양한 꼭지로 구색을 갖췄다. 3년째 해오는 동안 4쪽에서 6쪽으로 한 차례 증면도 했고 윤호 동생 윤하가 태어나면서 발행인도 4사람으로 늘었다.

논쟁코너에서는 한 주제를 두고 각기 다른 의견을 지닌 이들이 등장해 갑론을박한다. <종이비행기> 1호의 지상논쟁 주제는 ‘엄마의 일’이었다. 아빠 서진석(36·나우콤 근무)씨와 엄마 김순영(36·환경정의시민연대 간사)씨가 각기 다른 견해를 펼쳤다. 아빠는 ‘안정과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싶다’고 아내를 설득하고, 엄마는 ‘이러다 퇴화되는 게 아닐까’하며 여성의 사회성을 강조했다. 부부의 각기 다른 주장은 각각 8남매, 4남매인 양쪽 집안 형제들의 눈길을 끌었다. 결국 같은 지면에 제3자인 윤호의 네째고모 서희자(44)씨가 등장해 윤호가 3살이 됐으니 자립심도 길러야 하고 윤호 엄마가 사회활동을 하려면 더 늦기 전에 취업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하며, 집안일과 육아는 아빠 엄마가 나눠하라는 주문을 덧붙이기도 했다.이 밖에도 ‘여기 잠깐’이라는 인터뷰 코너에는 환갑을 넘긴 윤호의 큰아버지 서인석(62)씨가 나와 ‘납골당, 우리라도 먼저 시행하자’고 역설하고, 유치원이라는 ‘조직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윤호, 오대산을 등정한 윤호의 사촌형 서주원군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간암으로 숨진 남편의 ‘과로사’ 인정을 둘러싸고 2년4개월여 동안 힘겹게 법정싸움을 벌인 뒤 승소한 세째고모 서향자(47)씨의 심경이 일문일답 형태로 실려 가족들의 열띤 지지와 성원을 받기도 했다.

성원 모두의 참여가 중요

(사진/논쟁과 인터뷰,현장스케치 등 다양한 꼭지로 구성된 <종이비행기>(위쪽). 전국의 가족신문중 가장 높은 <민지와 승환이네>. 종이신문(가운데)의 호응에 힘입어 인터넷으로도 펴낸다)

뭐니뭐니해도 <종이비행기> 독자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기사는 87년에 작고한 윤호 할머니의 ‘지상유품전’이었다. 돌아가신 뒤 열두 번째 맞는 제삿날 막내인 윤호 아빠의 제안으로 8남매가 제각각 지니고 있는 어머니의 유품-보자기, 수건, 빗, 옷, 사진 등을 품고 와 사진을 찍은 뒤 각각에 얽힌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했다. 가족독자는 물론 과천의 이웃들과 친지들도 이 기사에 콧등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얻기도 했다.

각지에 흩어진 <종이비행기> 가족독자들이 가장 먼저 펼치는 면은 알림란이다. 이사나 전화번호 변경 소식을 비롯해 진학소식, 운전면허 딴 소식, 아르바이트 구한 소식, 마라톤 출전 소식, 학교 CF 출연소식 등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실용정보란 구실을 톡톡히 한다. 신문을 만든 초기에는 전화해서 물어가며 취재했지만, 요즘에는 가족독자들이 알아서 전화해 준다.

가족신문은 가족들이 대화하는 데 훌륭한 매개가 된다. 가족신문을 만들고자 한다면 누구 한 사람의 입맛대로 만들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저마다 장점을 살려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기간 정해 지속적으로 발행해야

서울여상 2학년에 재학중인 양윤자(17·서울 대치동)양은 9월1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마루에 둔 컴퓨터를 켰다. 등교 전에 간밤에 있었던 태풍소식을 기사로 만들어 넣기 위해서다.“엄청난 태풍 ‘프라피룬’ 영향에…

요즈음 밤낮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아빠께서 하시는 가게 장사가 영∼ 파리떼들만 날린다고 합니다. 비 때문에 손님이 뚝! 끊겨버린 거죠. 에휴. 한숨만 나오시는 아빠와 엄마를 위해서 빨리 이 태풍이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음. 흐린 날이 있으면 언젠가 꼭 쨍!! 하고 해뜰날이 있을 거예요. 그렇죠? 엄마! 아빠! 힘내세요∼.”

이 기사는 오락실을 하는 아빠에게 위로삼이 띄운 편지이기도 하다. 윤자네 가족신문 <컴매니아>(www.happyne.com 한 뒤 ycfamily를 클릭)는 인터넷광인 윤자네 가족의 특징을 잘 살린 제호다. 윤자는 서울시 정보기능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할 정도의 실력파이고, 아빠는 인터넷을 이용해 야구나 골프 등 스포츠중계를 주로 보고, 엄마는 각종 실용정보와 문학코너 등을 자주 찾는 인터넷 마니아다. 글은 주로 윤자가 쓰지만 기획은 지방에 있는 언니만 빼고 엄마, 아빠, 윤자, 늦둥이 남동생까지 온 가족이 모여서 한다. 윤자네 가족이 모이는 시간은 밤 12시 이후. 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다. 윤자는 기간별로 내기보다는 그때 그때 기사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꾸 자신만 글을 쓰게 될 것 같아 망설이는 중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차례 가족들이 준비해둔 글을 올리는 방법으로 신문을 발행할 계획이다.

“망설이지 말고 일단 시작해봐요!”

(사진/온 가족이 인터넷광이라 신문이름도 <컴메니아>라고 붙인 양윤자양의 가족(위쪽).가족신문은 꾸준히 발행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LG상남도서관 관장 정윤석씨네 가족)

인터넷 매체든 종이매체든 가족신문은 정해진 기간에 지속적으로 발행하는 게 좋다. LG상남도서관 관장 정윤석(43)씨네 가족이 내는 인터넷 가족신문 <혜련이와 혜미네>http://inews.org/4angels)는 98년 10월에 창간되어 매월 10일께 한 차례씩 발행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혜련이와 혜미가 방을 합친 사연까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일상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중3, 중1인 혜련이와 혜미가 학교공부에 열을 올리는 바람에 요즘에는 주로 ‘아빠의 생각’ 코너에만 장문의 글이 오르지만 한호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내고 있다. 정씨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이들의 시각에서 알리고,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만든다”고 말한다. 가족신문 덕분에 혜련이는 초등학교 때 헤어진 친구의 소식을 알았고, 혜미는 글솜씨가 늘었다고 자랑한다. 아빠와 두 딸이 의견차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아빠가 너무 글 위주로 신문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양한 그림이나 사진을 넣으면 좋을 텐데, 역시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아빠는 텍스트 위주라는 게 딸들의 항변이다.인터넷 가족신문에는 간혹 불청객이 찾아드는 일도 있다. <혜련이와 혜미네> 경우에는 시험에서 1등한 이야기를 올렸더니 이를 빈정대고 간 네티즌이 있었고, 잘생긴 딸 둘의 얼굴을 사진에서 보고는 못생겼다고 욕하는 이들도 난데없이 등장했다. 아빠는 웬만한 글들은 남겨두지만, 딸들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들은 가능한 한 먼저 찾아 지워버린다. 간혹 이런 ‘버그’가 끼기도 하지만 정윤석씨는 대체로 독자들의 반응이 참 좋다고 말한다.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간혹 버거울 때도 있지만 딸들에게 한 아빠의 약속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거르지 않고 펴낼 생각입니다.”

가족신문을 펴내는 가족들은 “망설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족신문은 가족의 일기장이자 훌륭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종이비행기>를 펴내는 윤호 아빠 서진석씨의 말이다. “싸릿대를 하나한 가져다가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듯한 가족을 보면서, 가족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질 겁니다. 일단 해보면 좋아요. 컴퓨터 작업이 어려우면 사진과 그림을 붙이고 손글씨로 써서 복사해도 보기 좋죠. 정지된 화면처럼 한 가족의 궤적이 차곡차곡 기록되는 동안 아이들은 자라게 될 것이고, 먼훗날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의 소중한 추억장으로 그 기록을 간직하지 않겠습니까.”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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