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재일을 사는 사람들. 김시종 시인의 말씀. “암석 위에 하얀 모근이 엉켜 사는 것이 재일동포의 심정이다. 남북이 갈라져 있으니, 언젠가 같이 살 수밖에 없다.” 남북 상황에 민감한 재일 사회. 그들은 지난 4월 말,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4·3위령제에서도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과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함께 참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인은 재일동포들에게 스스로 만든 말인 ‘선험성’, 앞서 실험하는 존재란 뜻의 이 말을 쓴다. 동족 화합의 선험성을 가진 재일동포는 이미 그런 훈련을 해오고 있다. “이제 꿈같은 일이 오고 있지요.” 노시인의 목이 멘다. 그는 지난 4월 <등바닥의 지도>란 일본어 시집을 냈다. 7년 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을 주제로 한 작품집. 일본열도의 등판을 연상하는 등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을 의미한다. 여기엔 지금 일본이 과연 어느 쪽을 향하면 되겠느냐는 깊은 뜻이 담겼다. 어쩌면 한반도의 정세를 반영하는 제목 같다. 등바닥의 지도 뜨거운 민주의 6월이 다시 왔다. 6월은 선택의 계절이다. 세계의 눈은 파도보다 더 변화무쌍한 한반도 상황에 몰려 있다. 북-미 회담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1년이 시험대에 오르는 6·13 지방선거도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숱하게 실타래가 꼬이고 극적으로 풀렸다.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물론 평화가 어디 벼락처럼 오겠는가. 희망과 좌절, 갈등의 시간이 쌓이고 쌓이며 오고 있을 터이다. 그 길까지 가는 동안 거쳐야 할 여러 단계들, 복병은 여기저기 숨어 있을지 모른다. 오래 그날을 꿈꾸고, 오랜 대화 훈련을 해온 자에게 모든 난제는 다시 한번 넘어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단단한 평화란 아마 누룩의 시간 같은 것 아니겠는가. 오래오래 안으로 부글부글 끓으며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