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30일 7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타이의 양심수 솜욧 쁘륵사까셈숙.
인터뷰하는 동안 솜욧은 수차례 입가를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의료인이 부족한 감옥에서 복역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치과의사를 만나지 못해 입안이 엉망이 됐다. 출소 뒤 병원을 다니며 망가진 몸을 회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7년의 형기를 마치고 감옥을 나온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감옥에서 나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군부독재 치하에 살고 있다. 감옥이 아닌 집에 있어도 자유가 없다.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 그저 작은 감옥에서 큰 감옥으로 나온 것에 불과하다.” 전태일노동상 특별상 수상 솜욧은 2016년 11월 ‘24회 전태일노동상’ 특별상을 받았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공동수상이었다. 감옥에 갇힌 솜욧을 대신해 딸 브라까이다오 쁘륵사까셈숙이 한국에 와서 상을 받았다. 현재 트로피는 식탁 옆 선반 잘 보이는 곳에 있다. 그는 트로피를 들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삶을 바쳐 한국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싸울 수 있게 했다. 그의 희생은 한국인뿐 아니라 타이 노동자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그의 죽음을 잊지 않고 그 뜻을 따라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상 1년6개월 만에 보내는 ‘뒤늦은’ 소감인 셈이다. 한국에서 촛불집회로 대통령이 탄핵된 것에 대해서는 “한국은 강한 민주주의 역사를 가졌는데, 촛불집회 같은 역동성이 한국의 정치 시스템을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타이 사람들을 한국에 보내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보고 배우게 하고 싶다”고 했다. “타이에서 민주화운동을 조직하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이가 더러 있지만 이들은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대부분의 타이 젊은이들은 백화점에서 쇼핑하거나 한국의 아이돌과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차노끄난처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감옥에 가거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다.” 솜욧은 침통한 표정으로 “타이에선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가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감옥에 간 뒤 아내는 자신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딸은 정부의 끈질긴 감시와 괴롭힘을 피해 타이 국적을 포기하고 캄보디아로 갔다. 솜욧은 타이의 민주화가 갈 길이 멀고 험하다고 하면서도 5년 안에 큰 변화의 물결이 일 것으로 내다봤다. “생활물가가 계속 올라 일반 국민의 군부독재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 세금 부담이 커지는데 정부는 경제 발전이 아닌 군사력 증강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5년 안에 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그때가 오면 단순히 정부를 바꾸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타이 전체 통치 권력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 타이에 소개 솜욧은 한국 사람들에게 타이 민주주의를 응원해달라고 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사회 변화는 전세계에서 연대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타이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준다. 우리가 함께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 타이 사람들에게는 “타이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솜욧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타이말로 개사한 <연대의 노래>를 타이 운동 현장에 보급하기도 했다. 그는 “노래를 부른 지 오래돼 잊어버렸다. 하지만 멜로디는 기억한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흥얼거렸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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