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호 위원장의 아내, 야채장사 이선애씨가 사는 법… “우리가 있어야 노동운동도 있다”
“설날? 내처 잠만 잤죠. 전날까지가 대목이었잖우.”
일기장 겸 가계부로 쓰는 노트에는 설 연휴 매출이 빼곡이 적혀 있다. 여느 때보다 5배쯤 웃도는 금액이었다. 그만큼 팔고 나면 몸은 푹 익은 파김치가 된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경기도 분당 서현동 집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구미동 네거리의 한 슈퍼마켓 야채매장으로 출근한다. 결혼한 뒤 꼬박 10년은 공장노동자로 컨베이어벨트 앞에 앉아 있었고, 10년 전 분당으로 이사와서는 줄곧 매장 앞에 서 있었다. 아둥바둥 벌고 아낀 돈으로 딸 정려(21·대학 2년)와 아들 지웅(16·고1)을 키우며 집을 장만했고, 이제는 두평 남짓하나마 슈퍼마켓 내 야채코너를 임대해 “내 장사”를 한다. 지난해는 설과 추석 때 딱 이틀씩 쉬어본 게 전부였다. 그 사이 남편은 단식, 수배, 구속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노동운동가의 길을 갔다.
함께 공장에 다니던 행복한 시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단병호 위원장의 부인인 이선애(45)씨의 입에서는 그러나 거창한 대의도, 가슴아픈 하소연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는 평범한 아줌마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는 억척 여성노동자이자, 자기를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못하는 억척 주부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사는 33평 아파트를 단 위원장이 민주노총 위원장이라 거저 생긴 줄 아는 거 있죠.” 그는 남편을 단 위원장이라는 공식명칭으로 불렀고, 말끝에 “있죠”를 붙이는 친밀한 대화습관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8월 남편이 구속되고 나서 이씨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아침저녁으로 뛰었다. “늦게 퇴근해서 밥 먹고 쓰러지듯 자고 그러니까 몸이 엄청 부는 거 있죠. 마음은 드글드글 하고. 누구나처럼 저도 단 위원장이 형집행정지 기간인 두달만 살고 나올 줄 알았지 덜컥 재구속돼 계속 갇힐 줄 몰랐죠. 살 조금 뺀 다음에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벌써 반년이네. 10kg이 빠졌어요.”
벌써 6번째 구속이다. 남편이 구속되면 그는 언제나처럼 한두달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이번에는 마음을 빨리 다잡기 위해 달렸다. “정신 놓고 있는 사이 매출도 뚝 떨어졌더라고요. 저라도 마음 흔들리지 말아야죠. 우리 슈퍼마켓 체인점이 15군데쯤 되는데 제가 판매여왕이에요.”
매일 하루 12시간씩 서서 일하다가 힘에 부쳐 지난해부터는 아르바이트 아줌마 한명을 구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일만 맡긴다. 나머지 근무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혼자 해낸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가락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오는 것도 그의 몫이다. 시간에 쫓겨 옥바라지라고는 거의 할 수가 없다. 한달에 두번씩 조합원들이 면회가지 않는 날을 골라 오전에 후딱 면회가서 아이들 근황, 집안 얘기 나누는 게 전부다.
두 사람은 79년 가을 아는 사람 중매로 만났다. 포항에서 트럭행상을 하던 조용하고 선한 성품의 “늙수그레한 청년”에게 이씨는 마음이 끌렸다.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세 모녀가 단출하게 살아왔죠. 동생과 나는 둘 다 여고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었으니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내가 철부지였지. 한밤중에 포항에서 트럭 들들 몰고 와서 국밥 사주던 나이많은 아저씨가 그저 나 예뻐하는 게 좋아 결혼했으니.” 이씨의 나이 스물세살, 단 위원장의 나이 서른한살에 두 사람은 결혼했고, 포항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때에야 가난한 홀어머니의 외며느리 신세가 어떤지 절감했다.
상고를 중퇴한 남편은 닥치는 대로 몸을 굴려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는 암담했다. 딸아이가 백일이 채 되기 전 부부는 시누이에게 10만원을 빌려 작은 가방에 옷가지만 챙겨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친정어머니와 여동생이 살고 있던 서울 면목동의 10평 연립주택에 더부살이를 하며, 이씨는 전봇대에 붙은 구인광고를 보고 완구공장에 다녔고 남편은 트럭행상을 다시 시작했다. 그뒤 남편은 서울 창동에 있던 동아건설에 취직했다. 남편은 매일 아침 도시락, 토큰 네개, 담배 한갑만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딸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긴 이씨도 계속 집 근처 공장에 다녔다. 곤궁했지만 그 시절이 부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아내인 동시에 노동자”
87년 남편은 손가락 잘리고 머리 깨진 동료가 치료비 한푼 못 받고 쫓겨나는 현실에 분노해 노동조합 일에 관여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서울지역 노동조합을 모으는 게 필요했고, 순리대로 해오다보니 전국조직이 필요해 전노협 결성까지 뛰어들었죠. 전노협이 민주노총으로 바뀌는 동안 계속 그 바닥에서 일해오다 이제는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됐죠. 남편의 일을 저는 이렇게 이해해요.” 나이 마흔을 앞두고 늦깎이 노동운동가가 된 남편은 그뒤로 15년 세월 동안 딱 절반은 구속·수배로 집 밖을 떠돌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도 집에 들어온 날은 사흘에 하루꼴이었다.
홀로 청약통장을 신주단지 모시듯 붙들고 살아오길 몇년, 이씨는 92년 드디어 분양받았던 분당의 23평 아파트를 갖게 됐다. 하루 12시간씩 야채코너에 서 있길 6년, 구제금융 한파로 집값이 폭락했을 때 지금의 33평형 아파트로 옮길 수 있었다. 단 위원장의 월급은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온다. 많으면 140만원, 적을 때에는 90만원. 그 돈은 그대로 단 위원장의 활동비이다.
“남편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옳은 일을 하다보니 위원장까지 하게 됐고, 위원장하다보니 어려움도 겪는 거라고 믿어요. 남편일에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예요.” 바가지 긁을 시간도 없이 살아왔노라고 말하지만, 남편의 이번 구속에 대해서는 못다한 이야기가 많다.
“힘들 때에는 저도 신경질 부리곤 하는데, 단 위원장은 그러면 가만히 듣기만 해요. 한바탕 하고 나면 제풀에 저도 풀리죠. 사실 그렇잖아요. 돈 좀 번다고 잘난 척하고 마누라 부려먹고 집안에서 위세 떠는 남편들 얼마나 많아요. 친정어머니가 살림을 맡아주시고 저 역시 건강하게 돈벌 수 있는데 더이상 뭘 탓하겠어요. 지난해 여성지하고 월간지 한 군데 인터뷰를 했는데 ‘지지리도 남편 복 없는 여자’, ‘청상과부’ 뭐 이렇게 제목을 붙였더라고요. 안타까운 마음에 그랬겠지만 노동운동가 아내들이 그렇게 복없고 과부생활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아내가 버티어주니까 남편들이 노동운동 할 수 있는 거죠. 저도 아내인 동시에 노동자예요. 야채파는 노동자. 주부 노동자.”
오전 11시께 이씨는 무시래기 삶은 것 한 보따리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출근길이다. 운동화를 신으며 그는 “매장이 추운데다 꼬박 서 있으니 발에 동상이 걸려 구두를 못 신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프라이드 승용차는 “남편보다 더 긴요하다”.
“그 사람은 참 포근한 남자”
이씨가 항상 차에 두고다니는 종이 한장이 있다. 두해 전 아들이 차사고를 당해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남편이 함께 가지 못한다며 그에게 그려준 약도이다. A4용지에는 분당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이 꼼꼼히 그려져 있고 어디서 좌회전, 얼마만큼 가서 우회전 이런 식으로 상세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서울지리에 어두운 아내를 위한 것이었다. “저는 단 위원장이 쓴 메모지 한장도 안 버려요. 그 사람 흔적이 좋거든요. 이 약도도 정말 못 버리겠더라고요.” 남편을 단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주문을 했더니 이씨는 잠깐 생각한 뒤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다정다감한 남자, 포근한 남자.”
단 위원장의 임기는 2004년 1월까지이다. 노동운동이 힘들지 않을 때는 없었으나, 이번 구속만큼은 이씨에게도 큰 상처와 시련이 됐다. 무엇보다 믿었던 정부로부터 당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 때보다 구속노동자의 숫자도 더 늘어났다. 지난해까지만 643명. 단 위원장은 경찰에 자진출두했으나 불법집회주도 등 죄목이 더해지기까지 했다. “하루빨리 단 위원장하고 조합원들이 풀려났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이번까지만 위원장하고 다시 공장에 다녔으면 좋겠어요. 여름휴가도 한번 가보고 싶고 그게 안 되면 영화관에라도 함께 가보고 싶어요. 명절에는 온 가족이 포항 시어머니도 찾아뵙고, 가족사진도 한장 찍고 싶어요. 제가 너무 욕심 부리는 건가요?”
매장에 출근하자마자 이씨는 푸른색 앞치마를 두르고 야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녹두도 갈고 더덕도 까고 마늘도 찧는다. 창고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떨렸지만 채소와 나물들을 다듬는 손길은 다정했다. 이제 곧 대보름이니 그의 손길이 더욱 바빠질 것 같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사진/ 분당 구미동 한 슈퍼마켓 매장의 야채코너.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아내 이선애씨의 일터다.

사진/ 아이들 어릴 때 집회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가족사진. 2년 전 마루에서 할머니가 찍어준 것이다.

사진/ 가계부 겸 일기장에는 집안일, 하루 매출액, 한달 생활비 등이 꼼꼼히 정리돼 있다. 재판 1차, 증인출석 등 단 위원장의 일정도 메모돼 있다. 남편이 늦깎이 노동운동가가 된 이래 15년간 이씨는 홀로이 노트를 써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