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백소아 기자
“과거 들추지 말라”는 가해자 반성문 그는 성추행으로 대표를 고소했다. 성희롱으로 고용노동부에 진정했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회사 쪽에서 합의하자는 연락이 왔다. 대표가 사과문을 써서 회사 직원들에게 돌리겠다고 했다. 대표가 이제야 잘못을 뉘우쳤나 생각했다. 사과문을 봤다. “불미스러운 일과 이후의 일련의 과정들은, 본인에게 본인의 많은 부족함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략) 임직원 여러분들과 과거 함께 생활하였던 분들의 미래를 생각하시어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지 않도록 협조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기가 막혔다. 적당히 둘러대고, 과거의 일을 들추지 말라고 협박하는 문서. 그는 합의를 거부하고 법대로 처벌해달라고 했다. 노동위원회 위원들은 합의를 종용했다. 민형사 재판으로 받는 보상금보다 많을 거라고 했다. 심판회의에서 지면 검찰 조사에서도 불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아했다. 성범죄 뒤 일어난 부당해고의 해결이 어떻게 진정한 사과도 없는 합의인지, 설령 심판회의에서 진다고 대표의 성추행 사실이 없었던 일이 되는지, 왜 검찰 조사에서 불리한지 어느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심판회의 날, 대표는 자신이 서울대·삼성·LG·김앤장 출신이고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 점을 고려해 판결해달라고 말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기각됐다. 회사가 근로복지공단에 그의 퇴직 사유를 ‘자진 퇴사’라고 한 것을 그가 ‘회사 사정에 의한 퇴사’로 정정해달라고 한 것이 ‘해고’가 아니라는 근거가 됐다. 평범한 직장인이 이런 복잡한 법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은 면담 다음날 지문을 삭제해 사실상 해고를 통보한 것을 핵심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성추행 사건의 충격으로 한 달 넘게 하혈, 급성 빈혈, 스트레스, 시력 저하, 두통,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공황발작,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겪어 대응을 못하다 뒤늦게 구제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대표가 다시는 누구에게도 저런 짓을 하지 못하게 하고, 파렴치한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하려면 크든 작든 벌을 받게 해야 한다”며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성폭력·성추행을 당했다며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직장인 미투 제보는 모두 250건. 공공과 민간기업을 가리지 않았다. 고위직이 신입사원에게, 정규직이 계약직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폭로만으로 가해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유명인 미투’와 달리 평범한 직장인 미투는 해결을 바라기 어려웠다. 2차 피해가 생길까 언론에 알리는 것도 두려워했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만드는 ‘성범죄 가해자 카르텔’이 강고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과 노동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카르텔의 공범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강간당해야 신고할 자격 있나? 스타트업 대표가 받은 벌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과태료 300만원이 전부다. 미투 폭로 이후 정부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제가 원한 것은 진심 어린 사과였는데, 국가기관의 위원이란 분이 돈이나 받고 떨어지라는 식으로 말하니 모든 의욕이 사라지네요. 성추행의 정도가 준강간이나 강간과 같은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벌을 받아도 벌금형 정도일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럼 내가 강간이라도 당했어야 신고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건가?’라고 느꼈습니다. 제 몸, 팔, 허리, 다리 그 어느 부위도 회사의 대표 혹은 저보다 높은 사람이 직급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만지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추행·성희롱이 없는 회사를 한국에서 찾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들 말하더군요. 회식에 가지 말걸, 그 회사에서 일하지 말걸, 아니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걸 등 자책감이 듭니다.” 용기를 내 성추행을 폭로한 그에게 이 나라 정부의 답변이 궁금하다.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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