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에 배송물품을 싣는 택배기사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기름값도 30만원 넘게 들었다. 도저히 먹고살 수가 없어 그만두겠다고 했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팀장은 그가 서명한 계약서 때문에 90일 동안은 다쳐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갈 수 없다, 나가면 하루 15만원씩 물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서명한 ‘집배송 위수탁 용역 계약서’를 살펴봤다. 제8조 “‘을’의 임의로 기간을 정하여 통보시 계약기간 만료(90일) 내 용차 및 퀵처리를 할 수 있으며, 그 비용에 대해서는 ‘을’의 운송수수료에서 차감 후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냥 협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차례 팀장에게 사직 의사를 밝혔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급여 270만원을 달라고 했더니, 회사는 하루 15만원씩 까고 있다고 했다. 며칠 뒤 내용증명이 집으로 날아왔다. “수신인은 계약기간 내 집배송 업무를 성실히 이행하여야 하나 무단결근(퇴사)을 하여 막대한 손해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였다”며 1095만원을 물어내라고 했다. “저와 같은 직원이 4명 더 있는데, 회사의 약관 협박 때문에 퇴사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건 진짜 현대판 노예 계약과도 같습니다. 식사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습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해 매일 밤 10시까지 일했습니다. 이러고도 약관 때문에 급여도 못 받고, 되레 회사에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니, 이거야말로 적반하장 아닙니까? 공정위 관할인지, 고용노동부 관할인지, 이건 대체 어디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근로계약이냐, 도급계약이냐 법원은 △택배 차량의 실질적 소유권 △회사의 구체적인 지휘 감독 △출근시 지각에 따른 제재 등을 고려해 근로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를 판단한다. 그는 회사 차량으로 회사 지휘·감독 아래 일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진정서를 냈다. “알바몬 사이트를 보고 월급 450만원, 대기업 배송직의 복리후생 조건이 좋아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진택배 배송기사로 일하고 싶었다. 회사는 1톤 탑차를 사야 한다고 했다. 태광물류라는 회사의 택배 담당 소장은 차를 사는 데 필요한 서류를 떼오라고 했다. 차 가격은 시세보다 700만원쯤 비싼 2730만원, 이상했지만 벌어서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 15시간 토요일까지 일했다. 한 달 보름 만에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하게 됐다. 그런데 대리점 소장은 계약을 해지하려면 2개월 이전에 통보해야 하고, 출근하지 못하면 다른 용차(용달차)를 써서 물건 1개당 2천원씩 물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배달할 때 받은 건당 운송료는 770원이었다. 그는 손해배상 비용으로 2400만원을 내야 했다. 월급은 한 푼도 만져보지 못했는데 한 달 만에 5천만원이 넘는 돈이 날아갔고, 살고 있는 집을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채용공고만 봤을 때는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가보니까 지입차였습니다. ①취업 사기가 아닌가요? ②손해배상금이 과도하지 않은가요? ③형식은 지입인데 근로자가 아닌가요?” 그는 직장갑질119에 전자우편을 보냈다. ‘알바몬’ 광고가 근로자 채용인 것처럼 작성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지입 차주라면 직업안정법 제34조(거짓 구인광고를 하거나 거짓 구인조건을 제시하여서는 안 된다) 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법원은 도급(위탁)계약이 아닌 근로계약에만 이 법을 적용한다. 결국 근로계약이냐 도급계약이냐를 다툴 수밖에 없다. 채용공고를 보고 가서 차량을 계약했고, 한진택배로 차량을 도색하고 유니폼을 입고 출근시간과 배송 지역에 대해 지휘·감독을 받기 때문에 근로계약이라는 점을 주장해볼 여지가 있다. 설령 근로계약을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해 자기는 부당한 이득을 얻고 상대방에게는 과도한 반대급부 또는 기타의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 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로서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거래행위’로 제소할 수 있다. 사기 광고 싣고 돈 버는 ‘취업 포털’ 그런데 전국 5만 명의 택배기사 중 이런 판례를 알고 있는 노동자가 몇이나 될까? 고용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택배기사 노예계약’에 관심을 가졌다면, 21세기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 조선 시대 노비 문서가 활개 치고 다녔을까? 아 참, ‘취업 사기’ 구인광고를 버젓이 싣고 돈을 받는 벼룩시장, 알바천국, 알바몬의 잘못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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