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으로 ‘속성 운전면허’ 따러간 김은형 기자의 ‘기계치 탈출기’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2월14일 새벽 6시. 서울 신촌네거리는 아직 달콤한 휴식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부터 붐빌 외국어학원 입구도 한산했고, 지하철역도 비교적 조용했다. 행여 늦을까 전날 회사에서 밤까지 샌 나는 로터리 한 모퉁이의 약속장소로 일찌감치 나갔다. 주변에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나 혼자 내려가게 되는 건 아닐까. 차가 오긴 올까. 가짜학원에 속아 돈만 날린 사람도 많다던데….
약속시간인 6시20분에서 2, 3분이 지나자 대형관광버스가 앞에 섰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사람들이 꾸역꾸역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가니 맨 뒷자리로 가야 할 만큼 버스 안은 꽉 찼다. 서로 초면이지만 ‘우리’는 공통의 숙원사업을 가지고 이 차에 올라탔다. 운전면허국가고시 합격. 멀쩡한 직장인이 면허도 없다는 전방위의 핀잔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북 진안의 첩첩산중으로 달려가게 된 것이다.
대형관광버스를 타고 첩첩산중으로
나 역시 대학 1학년 때부터 방학 때마다 면허를 따라는 식구들의 권유를 유유히 무시하며 10년을 버텨왔다. 학생 때야 운전할 일이 없으니 불편을 못 느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방출장에 수송팀이 함께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꼼짝없이 대여섯 시간, 길게는 열 시간 가까이 혼자 운전을 해야 하는 사진기자 옆에서 전전긍긍해야 했다. “여태껏 면허 안 따고 뭐했어요?”에서 “면허 안 따는 데 특별한 소신이 있나 보죠?”라고 바뀌는 질문에 대답하기도 점점 궁색해졌다. 우리나라의 면허취득자 수는 2001년 12월 말 현재 유효숫자로 1988만4337명. 투철한 환경주의자나 기계문명 거부자도 아니면서도 면허가 없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건 무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멀리 이사간 집에서 한 시간 반 걸리는 출근전쟁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내게 면허취득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그러나 짧아야 5주, 길게는 두달 가까이 걸린다는 전문학원 입학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활이 불규칙적일 수밖에 없는 업무 특성상 매일 한두 시간을 투자하기란 불가능한 임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따야지, 따야지 노래만 하며 시간만 보내다 어느날 구세주와 같은 광고메일을 받았다. “운전면허! 단 한번에 학과, 기능 취득 기회”, “100% 합격 보장”. 사기성 속성운전학원과 불법운전학원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가 지난해 겨울 <한겨레>에 나온 터라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회사 동료 두 사람이 같은 학원에서 이틀 만에 코스 합격을 했다고 하기에 학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불법학원은 아닙니다.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번 등록하면 추가비용 없이 합격할 때까지 계속 연습시켜드리고요.” 서울 광진구에 있는 학원에 가서 ‘2종 보통(오토)’으로 등록했다. 실제 연습공간은 전북 진안. 그러니까 서울의 학원은 지방의 연습학원으로 갈 사람들을 모으는 모집책인 셈이다. 서울이나 경기도의 경우 수험생이 밀려 필기시험을 본 뒤 보름 가까이 기다려야 기능시험을 볼 수 있지만 전북은 하루에 필기와 기능시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2, 3일 동안 ‘맹훈련’을 한 뒤 동시 합격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운전을 몰아서 배운다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겠지만 바쁘고 급한 사람들에게는 ‘딱’인 조건이었다. 주중에 매일 출발하는 버스는 이렇게 바쁘고 급한 사람들로 거의 만원을 이루는 듯했다.
점심시간쯤 진안의 연습장에 도착했다. 전주에서도 한 시간쯤 들어가야 하는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에 가까웠다. 학원 앞에 좁은 국도가 있고 건너편 멀리에는 민가도 몇채 있었지만 밀폐된 연습장의 분위기는 “합격이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그랬다. 연습자의 90% 이상은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지만 간혹 대전과 부산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학원에 내리자 몇몇 강사가 아는 척을 했다. “또 왔어?”, “아직도 안 붙었어요?”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곯아떨어졌을 때 이 아가씨가 귤도 까먹고 소설책도 보면서 여유를 부린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달에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1종 기능시험에 세 번째 도전을 하는 것이다. 연습자들끼리도 안면이 있는 듯 인사를 나누었다.
전체 합격률 50% 정도라니…
뭔가 이상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원장에게 물어보니 “(첫 시험에서) 전체 합격률이 50% 정도”라고 한다. 올해부터 채점방식이 까다로워져 지난해보다 20% 이상 떨어졌다고 한다. 서울에서 90% 이상이라던 2종 오토 합격률도 70% 정도라고. 럴수 럴수 이럴 수가. 합격률 100%란 무조건 합격이 아니라 한달이고 1년이고 될 때까지를 의미했던 것이다. 이날 도착한 사람들 30여명 가운데 3분의 1 정도도 재접자, 즉 재도전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기계치에 가까운 나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원래 다음날로 예정했던 시험을 하루 미뤘다. 떨어져서 다시 내려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당할 수모를 생각하니 차라리 하루 연습을 더 하고 시험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출발, 정지, 가속기, 변속기 등의 기능을 익힌 뒤에 코스 시험의 공식을 배웠다. 굴절, S자, T자 외에도 교차로, 철길, 변속 구간, 주차 등 구간구간마다 외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연습하는 건 불법이라 보통 두 시간씩 연습하고 30분을 쉰다. 처음 온 사람들은 강사로부터 정규적인 교습을 받지만 재접자들은 점심시간이나 처음 온 연습자들이 쉬는 시간 틈틈이 차를 타야 하는 설움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연습이 끝난 뒤 식사는 한밭집처럼 생긴 학원 건물 안 간이식당에서 해결해야 했다. 4천원으로 다소 비싼 ‘짬밥’이었지만 밥투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식당에 앉은 3분의 2 정도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이들이었지만 나이 지긋해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두 번째로 이곳에 내려온 50대 중반의 한 중년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사업하면서 남이 운전해주는 차만 타다가 IMF 때 홀랑 말아먹었어. 실형까지 살았거든. 얼마 전 건축자재업을 다시 시작했어. 직접 소형 트럭으로 운반도 해야 하기 때문에 면허가 한시라도 급한데 이거 참 속타는구먼.” 그래도 전에 왔을 때 밤새워 공부한 학과시험이라도 붙어놔서 다행이라고 너털웃음을 웃는다.
저녁을 먹은 뒤 밤 9시부터 다음날 시험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함께 ‘막판 요점정리’ 시간이 시작됐다. “굴절은 앞 코스, S자는 두 번째 코스, T자는 1번과 3번 코스, 주차는 1번과 4번 자리가 유리합니다. 철길 앞 정지할 때 3초 세는 것 잊지 마시고요”, “점수 되는데 완주차하려고 하지 마세요. 90점 나오면 반주차만 하시고 돌아오세요”. 간이 건물에 모여 앉은 수험자들은 대학입시를 압둔 수험생처럼 눈을 반짝이며 강사의 족집게 강의에 몰두했다. “코너 돌 때 자꾸 경계석을 밟는데 핸들을 몇 바퀴나 돌려야 하나요?” 앞에 앉은 누군가 질문하자 “그건 감이에요. 몇번 내려오시면 익히게 될 겁니다”. ‘재접’을 예고하는 강사의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숙소는 공사장의 가건물처럼 지어놓은 학원 한 모퉁이에 있었다. 일곱명 정도의 여성수험자들이 이날 같이 자게 됐다. 세 번째로 이곳에 온 박아무개(22)씨에 따르면 연휴 끝이라 지금은 사람들이 매우 적은 편이라고 한다. 2월 초에는 좁은 마룻바닥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고. 기획사 일을 배우고 있는 그는 연예인 로드매니저를 할 때 필요한 밴 운전을 하기 위해 1종 시험을 보러왔다고 한다. 처음 왔을 때는 30분만 책을 보면 된다는 친구들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학과시험에 떨어지고 지난번에는 75점으로 아깝게 기능시험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꼭 붙을 거라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던 그는 다음날 또 떨어지고 말았다.
신청인지 수두룩한 속성학원의 경력자들
다음날 새벽 4시 반부터 학원은 연습하는 차들로 북적였다. 1박2일로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연습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험 당일 이렇게라도 보충 연습을 해야 했다. 전날 함께 온 일행 중에 상당수가 시험을 보러 갔다. 오후 서너시가 되니까 시험보러 갔던 사람들 가운데 몇몇이 눈에 띈다. 떨어져서 다시 연습하러 온 사람들이다. “재시험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 강사에게 물어보니 “40대 초반 정도된 어떤 아주머니는 코스, 주행 합해서 한달 넘게 이곳에 머물며 연습했는데 결국 주행시험은 떨어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또 어떤 강사는 학과시험 신청인지만 18개를 붙인 환갑넘은 할머니 이야기도 했다. 다음날 시험보러 가서 나는 학과시험의 실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시험감독관이 2종 학과 합격자가 50% 정도 된다고 했을 때 설마했는데 21명 가운데 두명만 합격을 한 것이다. 40점대, 심지어 20점대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나이 많은 수험자가 많은 지방 시험장의 지역적 특성도 없지 않을 거다. 시험장에서 나와 공개된 점수표를 보며 한 노인은 “52점이나 나와부렀구만. 시험도 자꾸 보니께 점수가 올라가네 그려. 담번에는 꼭 붙겄어”라며 같이 온 사람에게 흐뭇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 더 있으면서 연습을 한 덕에 기능시험도 웬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기능연습도 운전이라기보다는 암기에 가까웠다. 다양한 위치에서 핸들을 어떻게 꺾고, 언제 가속기를 밟아야 하는지 다 공식이 있었다. 물론 운전을 하기 위해 이런 기능에 익숙해지는 건 중요하지만 과연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한 강사도 코스시험의 문제점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운전선진국가에서 우리나라처럼 코스 시험보는 데는 거의 없어요. 이건 정말 시험을 위한 시험에 가깝죠.”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로주행시험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진짜 운전실력을 테스트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형식적이면서도 까다로운 기능시험의 난이도를 낮추고 도로주행을 좀더 엄격하게 시험봐야 한다는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됐다.
연습을 충분히 했다고는 하지만 시험장에 도착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내가 떨어지고 돌아가면 즐거워할 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결과는 80점. 턱걸이 합격이었다. 대기소에 돌아오니 오늘 시험 본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전체 22명 가운데 6명이 합격했다. 내가 시험장에 들어갈 때 “미스 김, 파이팅”을 외치던 아저씨가 “합격턱 내야지”하며 축하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에게 음료수까지 돌렸다. 떨어진 사람이 많아서 붙은 사람들이 오히려 표정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다. 나 역시 자꾸 찢어지는 입을 다무느라 애를 먹었다.
22명 중 6명 합격, 입이 귀에 걸리네
10년 이상 운전을 하다가 2년 전 면허가 취소돼 다시 시험봤는데 떨어졌다는 한 아저씨는 벌써부터 술한잔을 해 얼굴이 불콰했다. “완벽하게 주차를 했는데 왜 센서가 안 울리냐 말야, 내가 운전경력 13년인데 말야.” 그는 애꿎은 옆의 합격자를 붙잡고 계속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루씩, 이틀씩 같이 생활하면서 그새 동료애가 싹튼 사람들은 길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마치 대학입시를 보고 나온 수험생들처럼 이야기를 꽃피우며 서로의 합격을 축하하고, 불합격을 위로했다. 어제 떨어졌다가 오늘 재도전에 실패한 한 아저씨는 “환장하겠구먼. 이거 자식 보기 민망해서 집에 가기는 다 틀렸네. 붙을 때까지 여기 있어야지 뭐”하며 가는 사람들을 배웅했다.
그렇게 남기고 온 사람들을 뒤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가운데 네명을 빼고는 모두 다음주 시험날짜를 예약한 상태였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누구나 있는 운전면허라고 하지만 운전면허시험 역시 살떨리는 긴장과 실패의 두려움을 동반하는 경험이다. 속사정을 알고 보면 면허시험 때문에 피눈물 흘린 사람도 여럿 있으니- 물론 고생했다고 이야기하면 바보되니까 내색은 안 하겠지만- “개나 소나” 따위의 수사를 동원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을 일이다. 운좋게 기능시험에 합격했지만 내가 오너드라이버가 될 수 있을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도로주행시험이라는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기대하시라. (김은형 기자의 오너드라이버의 꿈은 ‘보도 그뒤' 기사를 통해 계속됩니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안전띠를 매고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내리고, 또 뭐더라…

매일 아침 6시 신촌을 출발하는 속성운전학원 셔틀버스는 발등에 불 떨어진 '무면허자'들로 꽉 찬다.

"00초 불합격입니다." 운전학원은 실제 시험장 같은 시스템으로 운전자들을 훈련시킨다.

"주차는 반주차로." 공식 중심의 연습에는 운전학원의 문제도 있지만 운전면허시험제도 자체의 문제도 포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