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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무대 넓히는 ‘나 홀로 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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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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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나자명(34)씨는 지금 일본 도쿄에서 일본 배우들과 함께 비지땀을 흘리는 중이다. 3월19∼24일 도쿄의 가제극장에서 공연하는 <레즈 시스터즈>에 참가 요청을 받아 캐나다 연출자 톰슨 하이웨이의 지휘 아래 한창 호흡을 맞추고 있다. 흥미로운 건 나씨가 설 연휴 직전 갑자기 기자를 찾아와 이런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극단의 홍보담당자가 아닌 배우가 직접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자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후배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다그치는데다가 저 역시 그냥 조용히 지나갈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직접 나섰어요.”

국제연극교류를 목적으로 이번 무대를 마련한 연극기획집단 라구텐의 초청장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일본국제연극인회의를 통해 얻은 정보에서 귀하가 배우로서의 진실과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연출가협회 이사장도 당신의 공연 참가를 절실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어떤 극단에도 소속되지 않고 홀로 활동하는 그를 일본에서 먼저 알아보고 불러준 것이다. 나씨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의 ‘낯선 행동’이 반가웠다. 스스로 자기 길을 개척하면서 삶을 두텁게 해온 것이나, 시스템 밖에서 ‘외롭게’ 서 있기를 스스로 원하면서도 그다지 외로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못하는 분야를 택한 게 연극이었다는 점은 조금 놀랍다.

“어렸을 적에 정서가 불안했고, 심한 열등감과 소외감에 시달렸는데 고등학교 때 이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연극을 시작했어요. 스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거지요. 다행히 꾸준한 노력과 인간에 대한 진실된 마음이 좋은 운들을 만들어주었어요. 무소속으로 있는 건 활동하기가 편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뭔가를 뚫는 매력이 좋은 거지요.”

나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마쓰야마 무용연구소, 쇼와 음악예술 단과대학 뮤지컬 연극공연과, 영국 런던의 배우훈련 스튜디오를 거치면서 홀로 실력을 쌓았다. 이후 일본 재일동포극단 신주쿠 양산박의 <오적> 등에 출연하고, 기국서·이성열씨 등 국내의 실력있는 연출가와 작업을 해왔다. 도쿄생활이 어떤지는 전화로 물어야 했다. “3개국 사람이 모여서 일하지만 국가보다 그냥 하나의 그룹이 됐다는 느낌이에요. 작품에 대한 토론이 더 치열하고 길다는 걸 빼면 국내에서 연극할 때와 큰 차이는 없네요.”

연극이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됐듯, 어둔 곳을 밝혀주는 자세로 계속 연극을 하겠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전화를 끊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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