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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학원강사도 인간답게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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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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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기자)
“이렇게 노동조합이 힘든 것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뛰어들지 말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때늦은 후회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온갖 어려움을 뚫고 뭔가 해냈을 때 내뱉는 성취감에 가까웠다. 서울 노량진 대성학원 강사노동조합(이하 강사노조)의 김강훈(44·화학 강사) 홍보담당은 그렇게 스쳐지나듯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토록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는 솔직한 표현이기도 했다. 강사노조 결성부터 폐업철회 투쟁까지 전말을 들여다보면 그럴 법도 하다. 김씨 등 강사노조 집행부는 학원쪽의 강사 부당해고에 맞서 지난 2000년 12월 노동조합을 꾸렸다. 지난해 8월에는 파업투쟁을 거치며 단체협약과 부당해고자 문제를 타결지었고, 올해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천명하는 등 파업 이후 학원 정상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돌아온 건 학원쪽의 느닷없는 폐업 공고였다. “적자를 들먹이면서 경영난을 폐업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은 노조를 무력화시킬 공작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학원쪽은 잇따라 폐업을 연기하고 있다. 지난 1월 초에 1월26일자로 폐업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공표했으나 폐업을 하루 앞둔 25일 한달 연기한 데 이어 지난 2월5일에는 다시 10월 말로 폐업을 유보했다. “강사와 직원의 생계를 볼모로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위장 폐업인 셈이죠. 그동안 시간을 벌겠다는 회사쪽의 속셈도 있고.”

폐업 대응 등 학원쪽의 노조 흔들기로 지난해 54명이었던 조합원은 15명으로 줄었다. 1월23일에는 학원쪽에서 내세운 직원들의 폭력적 대응을 피해 임시로 몸을 피해야 했다. 비록 폐업 유보가 기만적 술책이긴 하지만 강사노조가 이룬 ‘절반의 승리’다. 남은 조합원을 묶어세우기 위해 투쟁속보를 챙겨야 하는 등 앞날이 여전히 험난하지만.

입시학원에서 강사노조가 결성된 건 대성학원이 최초다. “대성학원 강사는 국내 최고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임금 때문에 노조를 꾸린 게 아닙니다. 눈 밖에 난 강사들을 멋대로 해고하는 전횡을 막자는 겁니다.”

대학 시절 한때 노동야학에서 활동했지만 노동 관련 블랙리스트에 오르내린 적도 없는 그에게 노조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1년 남짓 싸우면서 단련된 것일까. 그는 “노조 슬로건인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노조’는 내가 지은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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