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그들이 본 것이 사실이라면 희생자들은 저 아래 누워 있을 것이다. 저 비행장 아래 구덩이에 여럿이 함께 묻혀 있을 것이다. 공항 가까이 살았던 열네 살 소녀는 집안 제삿날 있었던 일이어서 기억이 또렷하다 한다. 일곱 살 아래 남동생과 와작착 총소리 나는 방향을 함께 봤다. 사람들이 막 우는 소리가 났다. 통시담(변소 돌담)은 높았다. 군트럭엔 불이 켜져 있었고, 유월 열사흘 달이 밝았다. “유난히 휘영청한 달은 너무 환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어.” 1950년 8월20일 예비검속으로 희생된 오빠를 둔 구순의 양 할머니가 말했다. “칠월 초야. 어른 키만 한 풀, 천상쿨이 우거졌어. 큰 소나무가 있었어.” 아무 일도 없이 곧 나온다 했던 오빠는 비행장 어딘가에 누워 있을 것이란다. 첫 번째 발굴 때 오빠의 유해가 나오지 않자 할머니의 상심이 컸다. “이것이 마지막 될 거라이.” 그녀는 초조해 보였다. “이게 어디 잊어불 일이야.” 그렇다. 어떻게 잊겠는가. 그녀는 이번 유해 발굴 작업에 생의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팔십 대의 할아버지도 아버지 주검을 찾을 마지막 기회라 했다. 4·3 70년. 제주섬은 지금 온통 4·3이다. 문재인 정부는 4·3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어느 해보다 유족들은 올해 4·3을 기다린다. 지금 국회에 상정된 4·3특별법 개정안의 통과는 그 첫 번째 기다림이다. 여기엔 4·3의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보상 등이 포함돼 있다. 4·3 때 행방불명된 사람만 4천여 명. 죄 없이 구금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후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인권 일으켜 세워야 하는 시간 제주국제공항은 누군가에겐 그렇게 아픈 공간이다. 4·3 70년 동백꽃 배지 하나씩 가슴에 달고 비행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어여쁘지만 하얀 눈 위에 뚝뚝 지던 동백꽃 목숨들처럼 아리다. 비행기는 여전히 굉음을 내며 오르락내리락 분주하고, 찬란하다. 하지만 한 귀퉁이에선 아픈 비명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기뿐이겠는가.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인권의 무덤이 이 땅의 곳곳에 있다. 강요당한 망각의 역사, 인권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시간이 오고 있다.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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