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회사로 돌아가야 해.” 두 손을 꽉 잡고 복직을 바랐던 어머니는 3년 전 악화된 치매로 막내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들은 “우리 막내, 고생 많다” “우리 막내, 미안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어머니와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어머니와 가까운 교외로 나들이를 나갔던 아들은 벌써 9년째 효자 노릇을 포기하고 있다.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사회에 거대한 상흔을 남긴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와 마주하게 된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평택공장에서 76일 동안 옥쇄파업을 치렀다. 공장 바닥에 눈물과 피가 떨어진 전쟁 같던 싸움. 공장을 잃은 뒤 싸울 곳도 잃은 ‘해고노동자’들은 이제 제 몸을 전쟁터로 삼았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그는 2012년 5일, 2013년 21일, 2015년 45일의 단식을 했다. 그리고 3월1일 다시 곡기를 끊었다. 단식 8일째인 3월8일, 그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천막에서 만났다. 총 단식 기간을 셈하면 79일. 이미 끔찍했던 76일의 파업 기간을 훌쩍 넘겼다. 8kg이 몸에서 빠져나가 있었다. _편집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3월8일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앞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단식 중에도 회사와 교섭하고 있다. 쟁점은 뭔가. 복직 시기를 명시해달라는 것이 우리의 핵심 요구다. 하지만 회사는 시기를 명시하는 것에 부담을 가지는 것 같다. 9년이라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간혹 희망의 빛이 내려앉기도 했다. 2015년 12월 쌍용차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사 합의가 이뤄졌다. 회사가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3월 현재까지 해고자 167명 중 37명만 복직했다. 남은 해고자는 130명이다. 회사가 약속한 시간은 이미 8개월이나 지났다. 남은 이들은 언제 복직할지 기약할 수 없다. 2월부터 시작된 교섭에서 쌍용차지부는 복직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김득중 지부장을 찾은 3월8일 5차 실무교섭이 있었지만, 뾰족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반전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쌍용차는 4월부터 1인당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근무 방식을 바꾸는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다. 신규 채용이 예상된다. 2015년 합의에 따르면, 신규 채용 때 해고자를 30% 비율로 뽑기로 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회사 쪽 관계자는 “교섭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말할 수 없다”고만 했다. 희망고문이 진행 중이다. “다들 쌍용차 문제가 끝난 줄 알고 있었다”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합의 이전에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편했다. 그때는 부딪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면 됐다. 하지만 합의 이후 3년이 흘렀는데 복직한 해고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합의 뒤 복직에 대한 조합원의 기대가 무척 높았다. 합의 사항이 이행되기 바라며 조합원들을 다독이며 지내왔는데…. 이미 지나온 시간이 너무 길다. 회사가 이 문제를 외면하고 시간을 끌 일이 아니라고 본다. 결단을 해야 한다. 우리도 투쟁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섭을 병행한다고 이미 말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교섭에 임하고 있다. 2015년 합의로 쌍용차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맞다. 합의 이후에도 열심히 싸웠다. 2016년에는 노동법 개악을 막기 위해 전국 순회 투쟁에 참여했다. 박근혜 퇴진을 위한 서울 광화문 집회에도 열심히 나갔다. 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한 국가 손해배상 청구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도 했다. 적은 인원으로 열심히 투쟁했다. 2017년 상반기가 지난 뒤에 복직 문제를 계속 알렸다. 하지만 2015년 합의로 모든 게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 이번 인도 원정 투쟁에서 현지 공관장과 주재원들을 만났는데 “왜 왔냐?”고 하더라. 다들 쌍용차 문제가 끝난 줄 알고 있었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달라진 점도 있을 것 같다. 2009년 상황을 돌이켜보면 조합원들이 옥쇄파업 과정에서 뼈가 부러졌어도 경찰에게 맞았다고 이야기를 못했다. 암흑의 시대였다. 감형을 받기 위해 경찰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 동료 이야기를 털어놔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가슴앓이하던 조합원들이 하나둘 ‘말’을 하기 시작했다. 파업 현장에서 찍힌 사진을 짚으며 “사실 이게 나였어”라고. 범죄자로 낙인찍혀 말하지 못했던 피해 사실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9년이 지나서야 상처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국가 손해배상 청구 문제 해결도 큰 과제”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3월8일 쌍용차 평택공장 앞 쌍용차지부 사무실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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