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연극·뮤지컬 관객 withyou(위드유)’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비교적 양질의 조직에서 일했으나 도처에 ‘나쁜 놈’들이 있었다. 조직 밖에는 더 우글댔다. 한 동료가 술자리 추행을 당했다. 나는 피해자를 데리고 나왔고 다음날 가해자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너 어제 어디서 누구에게 이런 짓을 했다. 내가 다 보고 기억하고 적어놓았다. 한 번만 더 그러거나 말이 들리면 이 메시지 네 마누라한테도 보낼 거다. 혹시라도 뭉개면 다음 단계가 있으니 각오해라.” 가해자는 그길로 피해자에게 싹싹 빌었다. 사실 다음 단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함께한다’는 용기만 있었다. 남성 공채 정규직들이 꽉 잡고 있는 대부분의 회사 인사과는 믿을 수 없었다. 잃을 게 많은 가해자일수록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지점을 공격해야 한다. 한 친구는 임원인 상사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그를 회사 비상계단으로 불러냈다. 그 자리에서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나 이 회사 어렵게 들어왔거든. 근데 너 때문에 그만두고 싶거든! 내가 혼자 그만둘 거 같냐.” 그리고 마무리 멘트. “×만 한 새끼, 승진은 개뿔, 밥줄부터 끊길 줄 알아라.” 몇 날 며칠을 이 악물고 연습한 결과다. 불타는 연기혼을 선보이고 친구는 몇 날 며칠을 앓아누웠다. 온몸으로 길을 내주는 분들께 감사를 실명을 까고 반복해서 알려도 가해자들은 꿈쩍도 않는다. 성범죄라는 고질적 ‘생활 적폐’가 고작 일부만 드러났을 뿐인데 온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만큼 뿌리가 넓고 깊다는 방증이다. 일부 입건된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조차 어떤 처벌을 받을지 가늠되지 않지만, 대부분 무탈하다. 빼도 박도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허울뿐인 반성문을 내거나 고개 한 번 숙이는 게 고작이다. 최근 거론된 인사치고 ‘제대로’(어쩌면 재빨리) 시인한 이는 내가 보기에 단 한 명이었다. 그나마도 피해 당사자에게 그 뒤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까지 스스로 밝혀야 제대로 된 공식 사과다. 컬링 스톤같이 짱짱한 아이들이 자라며 움직인다. 온몸으로 쓸고 닦아 반듯한 길을 내주는 피해자이자 생존자, 발언자들께 엎드려 감사드린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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