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으로 돌아간 ‘영원한 청년’
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오늘 첫 수업을 했는데 44년 전으로 돌아간다는 감회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러면서도 남은 1년 반 학창생활을 어떻게 모범적으로 해나갈 것인지 부담도 들었죠.”
교장선생님은 후배, 동급생들은 손자뻘인 늦깎이 고교 2년생이 있다. 지난 9월2일 청주농고 2학년에 복학한 윤형근(61·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씨. 그는 한국전쟁 당시 부친이 납북되면서 가계가 기우는 바람에 이 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44년 만에 다시 교복을 입고 2학년 원예과 1반 학생이 됐다.
윤씨의 못 다한 공부는 자취생으로 다시 시작됐다. 집에서 학교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리자 아예 학교 근처에 자취집을 구한 것이다. “환갑이 넘어 자취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요. 그래도 해야죠. 해낼겁니다. 오늘 손자 같은 아이들 앞에 서서 ‘날마다 그저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이 학교에 무엇인가 남겨야 한다’고 당부했죠.” 사실은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나 마찬가지였다.
윤씨는 자신의 특기인 중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같은 반 아이들과 가깝게 지낼 생각이다. 중국어는 지난 93년부터 배웠다. “학교를 중퇴한 뒤 공무원시험을 보려고 혼자 계속 공부했죠. 하지만 도중에 그만뒀습니다. 월북자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시험을 봐도 연좌제에 걸려 될 수가 없었죠.”
그러나 공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식지 않았다. 맨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 공장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하던 그는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중국어를 제대로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그뒤 틈틈이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해 상계동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7년여 경비원 생활 내내 중국어 회화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다. 날마다 이어폰을 끼고 살다보니 동료경비원으로부터 “나이 먹어 유행가나 듣고 있다”는 애먼 핀잔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정년퇴직하자마자 퇴직금을 털어 중국 베이징 광바오대학에서 중국어 어학연수를 받기도 했다. 연수를 끝내고 돌아와 이번에 청주농고에 복학한 것이다. “오늘 첫 수업 때 교과서를 열권 받았는데, 다른 과목은 다 따라갈 수 있겠지만 영어하고 수학은 캄캄하더군요.” 그래도 그는 중국 문화 전문가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는 ‘영원한 청년’이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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