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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건의 일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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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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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십여년 전의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 이런 것이 있었다. 다리 밑에 거적을 치고 있는 거지소굴로 거지 하나가 신문지를 들여온다. 세상소식이 궁금한 왕초에게 신문을 읽어주는데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 국정 최초로… 다리 밑에 곤두박질, 경제협상 결렬 위기… 일가족 몰살, 이런 식이다. 군데군데 뜯겨져나가 걸레가 된 신문을 붙여 읽으니 그런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신문을 뜯어붙여서 말도 안 되는 말을 만들어 사람을 웃기는 일이 작금에 벌어지고 있다. 납북위기에서 탈출… 벤처사업으로 주목… 정관계 전방위 로비. 이쯤 되면 도무지 한줄로 연결될 수 없는 기사내용이다. 그뿐인가. 보물발굴사업… 주가조작… 대통령의 처조카쯤 되면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국가와 사회 이데올로기의 지배

이게 세상소식을 드문드문 얻어듣는 데서 오는 해프닝이면 다행이다. 벌어진 사건의 추이를 꼼꼼히 살펴본대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마치 엉켜버린 실타래에서 아무 실이나 잡아당기면 모두 딸려오는 것처럼 도무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줄줄이 엮여 있다. 그뿐이 아니라 모든 사태의 전개과정조차 중층적이다 못해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윤태식씨 사건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 사건에는 우리 사회에서 피상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분야가 모두 망라되어 있다. 신문이 분류하는 정치·사회·경제·국제·사회·문화면으로 보더라도 아내를 살해한 것은 사회면, 국정원이 개입해 납북에서의 탈출로 조작한 것은 정치면, 벤처사업가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은 경제면, 전방위로비가 정관계를 총망라했다는 데서 다시 정치면, 홍콩경찰이 수사에 개입했다는 데서 국제면, 심지어 벤처사업가로 대통령을 만났다면서 한심한 정부를 비난하는 언론이 이전에 그를 벤처인으로 치켜세운 전력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 이르면 언론면 등등 도무지 사건의 본말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여기서 이즈음의 다른 사건들에서처럼 그저 이 나라가 구석구석 실핏줄까지 썩었다거나 정말 총체적 부패가 끝간 데를 모른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다시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렇게 사회 전체를 망라할 수 있는 사건이 쉽게 등장하는 것이 어쩌면 그동안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한 대가(?)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원래 모든 사건은 총체적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모든 사건은 일상적이다.

우리는 이 사회가 각각 전문적인 영역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국가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과 가족이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소단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정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십년 동안 이 사회를 지배해온 정치사회적 의도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 이를테면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살라고 하면서도 데모하는 학생에게 학생의 본분을 지키라고 요구하거나(정치는 정치인들끼리만 하도록) 남자들에게 회사와 가정에 충실할 것을 강요하는(사회적인 큰 사건에 관심을 두지 말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의도하는 것은 자명하다. 국가와 사회 이데올로기는 지배의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해왔고, 그것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이제 새삼 그 본질을 들여다보고 경악할 뿐이다.

자신의 일상이나 챙겨라

실제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현대사회가 그렇게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한 가정에 불과하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일상이다.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일상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이며 경제적이며 사회적이며 문화적이다. 이것을 분리해서 따로따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일상적 범주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없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임에 틀림없다. 또 개인과 가족은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경제인이 돈 많이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경제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끝마다 국가와 사회를 들먹이는 정치인이나 관료 역시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뿐이다. 사회의 안녕을 위해 조직적으로 살해된 아내에게 간첩누명을 씌우는 사람이나 국가에 도움을 주기 위해 보물찾기를 했다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이제부터는 정치나 경제를 위해서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일하라는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 제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려는 생각 말고 자신의 일상이나 제대로 챙기라는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야 십여년 전의 코미디 프로를 새삼 떠올리며 씁쓰레해하는 일이 없어질 것 같다.

김진송/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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